인생의 터닝포인트. 꼴등에서 일등되는 비법
시간을 훌쩍 넘겨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생긴다.
중학교 1학년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기다고 배를 붙잡고 골목길에서 누워서 뒹굴었던 삼총사가 있었다.
학기초에는 누구나 그렇듯 잘 지냈다. 서로 챙겨주고 응원하고 주말에도 붙어다니는 단짝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의 타고난 본성인지 자기를 보호하려는 습성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3명이 모이면 한명을 왕따 시킨다.
우리도 예외는 없었다. 셋이 같이 다니면서 둘만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 한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몇주후에는 붙어있던 둘 중 하나가 떨어지고 나머지 한명과 팔짱을 끼고 걷는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어쩌면 초등학교 5학년때 너무 힘들었던 일 덕분인지, 내 차례가 왔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다.
올것이 왔구나!! 생각이 되고 혼자가 되는 생활을 즐겼다.
학교를 오고 갈때는 핑계를 대고 그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종치자마자 화장실을 혼자 다녀와서 교과서를 펴고 교과서를 그대로 쓰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는 싸온 도시락을 먼저 후다닥 먹고 다시 교과서를 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재미가 없어서 요점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대단원을 쓰고 세부 중요 내용을 쓰고 한단원을 10장으로 정리했으면 그 후 재정리하여 5장으로 만들고 또 2장으로 만들었다. 그에 재미가 붙어서 전체 교과를 정리했다.
나의 왕따 기간은 1~2달 정도 였던 것 같다.
아마 왕따를 시켜도 재미가 없고 괴롭힐 수가 없으니 빨리 끝났던 것 같다.
왕따가 언제 지나간지도 모르게 끝낸 후에도 그 아이들에 대한 원망이 남았는지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그 후에도 난 교과서를 정리 했다.
그러던 중 2학기 기말고사 즈음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전교생 700명중 345등 하던 내 등수가 17등, 반에서 1~2등으로 올라갔다.
나를 왕따시키던 아이 중 성적이 상위권이였던 아이가 나에게 와서 울면서 왜 똑같이 노는데 너는 성적을 잘 받았냐며 화를 냈었다. 본인 덕분이라는 것은 몰랐었나보다.
그 뒤 공부에 대한 비법을 알아냈다. 교과서 정리하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많아져서 안보던 교과서를 보게 되었다. 선생님이 강조하던 예습복습!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같이 가려고 친구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고, 점심시간도 식사 후 시덥지않은 농담과 연예인이야기, 말뚝박기, 친구들 평가하기와 같은 일에서 해방되었다. 딱 밥만 같이 먹고 내 시간을 가졌다.
하하호호 웃으며 떡볶이를 먹으며 한두 시간 걸리던 하교길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
2학년이 된 후도 굳이 어려운 여자들과의 인간관계에 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하면 가식적이라고 욕먹고 이쁜것을 가져오면 자랑한다고 욕하고 무엇인가를 나누어주면 돈으로 친구를 산다고 시기와 질투를 하는 관계에 얶매이고 싶지 않았고 친해진 후의 민낯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인지 다가가기가 무서웠다. 대충 분위기만 맞춰주는 친구관계가 지속 되었고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친한 친구가 많지 않다. 하지만 "모든 근심과 걱정은 인간관계에서 나온다."는 말 처럼 덕분에 근심과 걱정이 남들보다 덜 한 것 같다.
만약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트러블이 일어났다면 그 자리에서 나와서 본인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의 소중한 두번째 왕따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고 자신한다.
전화위복, 외로움을 견디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