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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Sep 25. 2024

40살 아줌마, 캐나다 대학 첫날

캐나다에 이민 올 때는 상상도 하지 못 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느리고 천천히 살기 위해서 캐나다에 오겠다고 생각했던 내 결심들은,
내 인생 모토인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즉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 죽을 것이고, 내 인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남은 인생 조금 더 재미있게 살아보기 위해,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녀보기로 했다. 

Unsplash의Element5 Digital

SINP 주 정부 이민을 통해 취업 비자로 온 덕분에 영주권을 10개월 만에 취득하여, 영주권자 신분으로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기에, 공립 학교보다는 입학 기준이 널널한 사립학교(RMT, 마사지)를 선택했다. 


캐나다는 상업 지역과 주거 지역이 약간 분리되어 있는데, 상업 지역을 가면, 어김없이 있는 것이 팀 홀튼이다. 그 수와 비슷하게 마사지 클리닉이 있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클리닉이 있는지 감이 잡힐까? 캐나다의 마사지는 보험으로 커버가 가능하기에 약간의 돈을 내고 받을 수 있어서 수요가 많은 것 같다.

만약 한국에서 유학원을 통해서 왔다면, 취업이 잘 된다는 소문만 듣고 유학원에서 추천하는 과를 선택하고, 나를 위한 미래가 아닌, 유학원에서 돈을 벌 수 있는 학교에 들어갔을 텐데, 영주권자의 신분으로 접근을 하니 선택지가 많아진다. 굳이 아이엘츠 성적이 필요하고 졸업하기 힘든 공립 학교보다. 입학하는 것도 졸업하는 것도 약간 어렵지 않은 사립학교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올해부터 캐나다 이민 정책이 바뀌어 사립학교를 졸업하면 워킹비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서 그런지 학생이 줄어든 것 같다. South 지역의 학교로 입학 했는데 학생이 많지않아 Downtown만 오픈한다고 한다. 

여담으로 내가 입학 한 학교의 영어 시험은 학교 자체에서 보는데, 이메일로 링크를 보내 주고 집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65점 이상이어야지 통과를 하는데, 처음 시험의 결과는 60점 밖에 안되어 상담해 주는 사람에게 다른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니, 시험을 다시 보게 해준다고 했다.


혹시 시험 시간 부족했어??

그렇다고 하니, 이번엔 시간을 더 넣어 준다고 했다. 그렇게 두 번째 시험을 보는데, 첫 시험 보다 약간 쉬운 문제들이 나왔고, 리스닝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여 만점을 받았다. 2년 전에 본 아이엘츠 시험은 6점이 나왔었는데,  캐나다에서 1년 동안 공부해도 영어 성적 올리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Unsplash의Stephanie Hau

만약 영주권을 딴 후 공립학교를 들어가려면, G12를 들으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 학생으로 입학해야 하는 것 같다. 학비를 3배나 더 내고 굳이 국제 학생으로 입학할 필요가 있을까? 문제는 G12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일 년의 시간이 소모된다. 본인의 영어 실력이 좋으면, 검정고시 같은 시험을 칠 수 있지만, 외국 유학을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닌다면 돈 버는 것 아니겠는가? 

SK 주는 G12가 무료 프로그램이었는데, 앨버타 주에서는 G12 도 돈 내고 들어야 해서 약간 아쉽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캐나다 경력 한 줄을 추가할 수 있기에 취업을 하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마 남편은 지금 듣고 있는 영어코스에서 실력이 쌓이면 G12를 들으면서 영어 실력을 향상 시킬 것 같다. 인생의 시간은 적지만 또한 많으니 즐기면서 가도 된다. 

그렇게 어영부영 대학을 입학하고, 학교에서 안내를 해주는 대로 Student Loan 을 신청했다. 나이 40에 학자금 대출이라니... 과장을 살짝 보태서 일찍 결혼했으면, 지금 대학가는 아이가 있을 나이인데,, 우습기도 하지만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낀다. 어렸을 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해봤던,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캐나다 유학을 지금 시작한다고 하니 오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학교에서 선물 박스가 도착하고, 그 속에는 실습에서 입을 옷과 책이 들어있었다. 


문과 졸업해서 생물 근처에도 못 가봤는데,
아나토미라는 것은 무엇이고, 이걸 어찌 외운다는 것인가..


마사지를 배우는 학교라고 해서, 몸으로 때우면 되는지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성이 가득하다. 
한숨 한번 푹 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한다.
처음에는 책을 하루에 10장씩만 읽자고 생각을 했는데, 그 또한 쉽지 않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근육학 책 한 권을 주문했다. 한국어로 쓰여있는 책을 받으니,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쓰여있다. 하루 종일 구글 번역기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되어 한시름 놓았다. 

유튜브에 접속해서 한국어 강의들을 맛보기로 들어본다. 시간은 지나고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상 앞에 잔뜩 메모를 해서 붙여 놓고 앉을 때마다 한 번씩 보면서 눈에 그림으로 익히기로 했다. 

이렇게 해도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보면 떠오르지 않는다.
Clavicle 쇄골, 열심히 중얼거리다가도 Cla까지만 떠오르거나 Clavicle 이 뭐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큰일이다. 깜지를 시작한다. 한 단어를 백번 쓰면 기억나겠지!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큰일이다. 

오늘부터 방법을 바꿨다. 하루에 딱 한 단어만 외우자! 


그렇게 예습을 하다가, 진짜 수업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18시간 온라인 수업을 듣고, 딱 하루만 학교를 나간다. 이렇게 학교를 다녀도 괜찮은가? 생각이 되지만, SK 주에서 공부한 G12 때도,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들으면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느꼈다. 

수업은 Zoom으로 듣는다.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가 생각보다 컸고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BC 주, SK 주, AB 주의 학생 168명이 함께 강의를 듣는다. 

와우, 이렇게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수업을 듣다니!


외국인이라 이해를 받는 상황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수업을 들으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졸업에만 집중을 하며, 열심히 출석을 해야겠다.

10월 2일이 첫 대면 수업인데, 이 또한 긴장되지만 잘 해낼 거다. 캐나다에 와서 작게는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고 크게는 대학을 등록하는 등, 크고 작은 산들을 넘으면서 한층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그리고 남편도 온 가족이 하루하루 어제보다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노력 중이고 현재 처해 있는 시간과 상황을 즐기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이제 2년간의 학생 생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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