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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걸 Mar 14. 2022

고추지를 먹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게 많습니다

고추지를 먹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


 어제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찬으로 나온 고추지를 먹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고추지란 고추를 간장에 담궈 오랫동안 묵힌 걸 말합니다. 그걸 집어서 한 입 깨물자 바삭한 식감과 함께 짭조름하고 약간 매운 맛이 입안에 확 풍겼습니다. 


 이렇게 씹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내가 어릴  적에는 이걸 먹지 못했다는 거지요. 거기다 이런 걸 먹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맛있는 것도 많은데 굳이 고추를 간장에 담궈 놓은 걸 먹느냐는 거지요. 


'고추는 그냥 먹기도 힘든데 그걸 간장에 또 담궈서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맛있다며 한 번만 먹어보라고 했지만 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든 지금은 나도 모르게 그 고추지의 짭조름하고 맵싸한 그 독특한 맛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그 맛을 즐길 줄 아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많아지면 그만큼 즐길 것도 많아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일단 음식 분야만 해도 예전에는 내가 먹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족발, 곱창, 순대, 매운탕, 감자탕 등이었습니다. 뼈다귀가 보이고 동물의 내장이라는 생각이 드니 도저히 젓가락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음식 속에 또 다른 맛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도 가보지 않으면 그 맛을 모르는 것처럼, 음식도 제대로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의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이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얻게 되는 보너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얻게 되는 보너스는 음식 이외에도 많습니다. 제일 큰 것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젊을 때는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싸움으로 해결하는 방법  밖에 몰랐다면, 지금은 용서와 이해, 설득, 인정 등의 방법을 통해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능력이 생겼지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아둥바둥하지 않게 되고, 욕심을 내 더 많이 가지려고 하지도 않고, 주어진 것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게 되고,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보다 그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 많이 생겨나기도 했지요. 그래서 지금의 삶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이가 들어가며서 시력도 점점 잃어가고, 이빨도 점점 잃어가고, 체력도 점점 잃어가지만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이런 삶의 지혜와 즐거움 등을 얻으니 그렇게 손해본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20대로 돌아가실래요?'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흔들며 '아니오'라고 답할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만약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몇 살 때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하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 제일 많이 나온 대답이 '지금 현재의 나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과거 젊었을 때가 좋았던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건 극히 일부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나이가 든 지금이 최고 행복한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의 즐길 거리가 훨씬 많아지고 넓어졌기 때문이지요. 


 오늘 밤에는 잠자리에서 자신에게 어떤 즐길 거리가 늘었는지 하나씩 세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아마도 행복하게 잠들 것 같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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