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의 마지막 이별..
서울에서의 3박 4일 중 마지막 날 밤 나는 브런치
에 글을 올리느라 분주했다. 아이 둘이 몇 번이고
엄마도 거실로 나오시라며 재촉했지만 글에 어울
리는 사진을 고르느라 나는 거실의 상황에 마음을
쓰지 못했다.
엄마인 나는 아이들 살림에서 정리정돈이 부족
해 보여 언짢았는데 아빠인 남편은 두 아이의
사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했다. 자신의 발톱을
깎아주고 발을 마사지해 주었는데 감동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철없던 때
와 비교하면 지금 두 아이는 너무 잘하고 있어
고맙다고 했다. 자신은 여태껏 부모님의 발을
만져본 적도 없다며(아버님은 작고 하셨기에
영원히 그럴 기회가 없다).....
-남편이 전해준 거실의 시간-
가끔 남편이 부인에게 발을 씻겨주는 행위나
아이가 부모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발적인 행동이 아닌 행사의
하이라이트 정도로 서로를 이해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며 감동을 자아내는 프로그램의 일환인
듯 싶었다. 아마 쉽게 마음을 내어 행하기 어려
원서 그렇겠지?
2013년 2월 친정 엄마와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난다. 일주일 내내 대학병원 응급실
에 계셨고 고열과 의식불명으로 진통제와 해열
제를 번갈아 투약 중이었다. 나는 24시간 환히
불 켜진 응급실에서 지내며 극단의 안타까움에
속이 탔다. 그러던 중 모포 아래 엄마의 발을
가만히 만져보게 되었다.
입술이 터져가는 고열에도 발은 어찌 그리도
얼음장 같던지! 발을 나의 따뜻한 손으로 감싸
쥐고 주물러 드리다 난생처음으로 엄마의 발톱
을 깎아 드렸다. 7일째 모든 증세가 가라앉고
일반 병실로 옮겼다. 의자에서 밤을 지새우다
보호자 침대를 보자 잠이 쏟아졌다. 짧은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면 맨 먼저 엄마의 발을 만져
보았다. 그날 밤은 서울에서 큰 아이가 시험을
마치고 온터라 함께여서 마음이 놓였다.
새벽녘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내 얼굴을 주무
르고 있는 게 아닌가! 느낌이 섬뜩하여 혼비백산
하며 일어나니 좀 전까지 멀쩡하시던 옆 침대
할머니가 넋을 놓고 옷을 벗은 채 그러고 있어
다. 치매가 온 순간이라 했다. 시차를 두고 도착
한 자식들은 '우리 엄마가 그럴 리 없다'며
흥분하고 절규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새벽녘 또다시 엄마의 발을 잡았을 때 느낀 건
'아 엄마가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나고 계시는구나
!'였다. 심장에서 가장 먼 발부터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불 끄진 병실을 뛰어나와 대기 중인
선생님들께 알리자 순식간에 커튼이 걷히고
엄마의 침대는 회색의 빈 방으로 옮겨졌다. 작은
오빠네에 연락했고, 세명의 형제자매는 외국
에서 연이어 도착했다. 모두들 나에게 엄마의
임종을 지켜본 건 복이라 했건만 나는 두고두고
그 시간이 너무 생생하여 마음 아프고 잊지 못
하고 있다.
출처: Oprah (Opening Heaven's Do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