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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ug 02. 2016

가진 것 없는 젊은 '그' 혹은 '그녀'를 만났는가?

말 한 사람은 세상에 없으나 그 '인정의 힘'은 살아있다.


 아기 범부채 꽃을 안고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무더운 7월 중순. 봄부터 정원에 꽃들이 바뀌어 필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지난주부터는 맑고 시원한 색감의 주홍 꽃으로 인해 마음은 그곳으로 더 달렸다.



 7월의 산 길은 모든 곳이 긴 수풀로 덮여있다. 장화를 준비하였기에 혹여 모를 파충류들을  피할 수 있어 공포심은 줄어들었다. 산소로 접어든 길 초입에는 호두 열매가 싱그럽다. 희뿌연 칼슘 비료를 뒤집어쓴 사과도 생장의 정점으로 질주하는 듯 보였다. 이 시기 두 나무 열매는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한 크기의 초록공을 매달고 있다.



 산소 앞엔 돌 화병을 묻어두었지만  뜨거운 볕에 꽃을 꽂아 두었다간 바로 삶겨버릴 것이다. 채워갔던 물에서 꽃을 꺼내 두 분의 무덤 위에 올려두었다. 드라이플라워가 되거나 혹여 비라도 내리면 흠뻑 젖어 한순간이라도 생기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장인 장모의 무덤가를 돌며 개망초와 풀을 뽑는 J의 모습이 애잔하다. 20세의 나이에 그는 나의 부모님을 처음 만났다.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그 시절 나의 부모님 나이가 되었다. 그는 지금껏 잊을 수 없는 마음과 말이 있다고 했다. 친정아버지는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우셔서 웬만해서는 누구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그런 분이 평생을 두고 그에게만은 "김서방은 믿음이 가고 아주 잘될 사람이야"라며 격려하신 말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해가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은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사랑 담긴 아버지의 응원이었을 뿐이다. 지금 나의 남편이 된 그는 대학  2학년 2학기에 군입대를 했다. 정원이 예쁜 집에서 셋째 아들로 지냈던 그는 제대 무렵 아버님의 부도로 말 그대로 길거리로 나앉는 것만 면한 어려운 처지가 되어

다. 나는 그의 가족들이 똘똘 뭉쳐 난국 타개를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는지를 보았다. 밀리고 밀린 자식들의 혼사는 88년 올림픽이 열렸던 한 해에 몇 달의 간격을 두고 삼 형제가 결혼을 했다.


 당연하게도 그는 철저한 '빈손'이었다. 그때 나의 부모님은 두 분의 소원했던 관계와는 달리 우리 부부를 참으로  따뜻하게 대하셨다-자랑스럽게 여겼고, 응원해 주셨고, 크고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붙여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성격이 급하고 무뚝뚝한 친정아버지였지만 막내 사위를 대할 때면 자상하게 표현하셨고 끝없이 인정해 주셨다.

이미 큰 성취를 이룬 형제자매들이 모였을 때도 언제나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셨던 일을 남편은 잊지 않고 살았다. 덕분에 그 역시 만족할만한 삶을 살고 있다 여겨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의 소원은 당신이 묻힐 묘지를(가묘를 미리 해둔) 직접 보는 거라 하셨다. 처음엔 무슨 이런 참담한 소원이 있나 싶었지만 많은 어른들의 소원이 어릴 적 고향 땅을 밟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했다. 부모님 묘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두 분이 신혼살림을 차렸던 옛날 집이 아스라이 보인다. 아버지는 산비탈길을 사위에게 업히다시피  다녀오신 몇 달 뒤 우리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젊은 날은  뭐가 그리도 없고 준비가 부족하던지! 예기치 않은 부도라도 나면 온 식구들이  힘겹게 내몰리게 된다. 행복과 안정감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가혹한 현실과 스토리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처지의 '그' 혹은 '그녀'를 만난다면

우리는 어떤 어른의 자세를 취해야 할까?"

그 나이에 제 힘으로 갖기 힘든 재물의 유무를 묻거나, 나아가 상대 부모의 재력에 따라 대우를 저울질하는 건 참으로 '어른'이라 칭할 수 없는 못남이 아닐는지?



 지난해 봄에 꽃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위해 작약 구근을 묘지 아래쪽으로 줄지어 심었었다. 일 년 전의 우리는 땅과 풀 구근과 꽃에 대하여 아는 게 전혀 없었기에 정성스럽게 심어두면 잘 자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남편은 비지땀을 흘리며 풀들을 이리저리 헤집은 다음에야 작약 몇 뿌리를 찾아냈다. 장인 장모의 묘 앞에서 찾아낸 작약을 정성스럽게 일으켜 세우며 J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말은
살아서만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난 뒤
에도 그 말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걸
보면 '말씨'의 의미가 새삼 와닿는다.


 말의 씨앗은 자라고, 좋은 기억들은 다음 세대에게 기꺼이 전해질 것이다. 다시 한번 더 젊고 궁핍한 젊은 누군가에게 어떤 말씨와 마음씨를 써야 할지 생각이 깊어진다. 편안한 마음으로 두 분을 만나고 우리는 함께 길이 없는 풀 숲을 내려왔다. 고맙습니다. 엄마,  아버지!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 사랑 어머님,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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