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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ug 24. 2016

마음을 흔드는 이것-Color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좋아합니다."


이미 바싹 타버린 해바라기 밭.

짙은 갈색으로 타들어가고 있는 커다란 토란.

데크 앞의 정원은 잔디밭 스프링클러가 연일

물을 뿌리는 덕에  타들어가는 것만은  면했다.

울타리 쪽은 심상치가 않다.

토양의 기울기 때문에 물을 줘도 계곡 쪽 담장

밖으로 흘러버려 흙이 물을 머금고 있지 못한다.


뙤약볕에 꽃들을 살피느라 서성이면 뜨거운

압력솥 안에 있는 것처럼 정신이 아찔해진다.

땅에서 자라는 많은 것들이 다 시름시름하다. 

물을 뿌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작정하고

정원 토양 속을 물로 채우는 작업을 계획했다.



마을 상수도는 급한 밭의  물 대기로 너무 써버린

탓인지 수시로 단수다. 관정을 파놓아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있어 본격적인 모터 가동을 시작했다.

흩뿌리던 물 대신 땅이 흥건히 젖어들도록 물을

주니 꼬박 사흘이 걸렸다. 이젠 물통이 된 거겠지?


생명 있는 존재와 인연을 맺는 것은 이런 가뭄

대책이 없어 힘겹다. 물 주기 엄두를 내지 못한

텃밭에서 불에 타버린 듯한 채소들이 안쓰럽다.

잘 보살피지 못하 마음이 편치 않다. 나무와

식물과 꽃들과의 관계도 이러 동물은 아무래도

기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원은 다시 생기가 돈다. 집을 둘러싼 산들을

바라보니 놀랍다. '하늘정원과 인간의 정원'이  

극도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온 마을과 온 나라가

더위와 가뭄에 초조해지고 숨이 막히건만 수만

년 전인지, 수천 년 전인지 모를 어느 시기부터 

존재했을 산과 그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

중인 나무들은 의연하기만 다.


7월부터 멀리서 보면 큰 연두 잎에 꽃이 삼각뿔

처럼 솟아난 칡꽃들이 있었다. 태양이 뜨기 전

J와 함께 칡꽃을 따기로 했다. 꽃을 충분히 따서

모은 후 함께 대문을 나섰다. 꽃 채집에 열을

내느라 놓쳐버린 덩굴에 생생히 피어난 칡꽃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천천히 걸으며 덩굴 사이에서 피어난 꽃들을

살피다 수없이 탄성을 질렀다.

"와~....."

"어쩌면 이럴 수가~......."

"아니 ~       오~...."

꽃이 풍성하게 피어난 곳에 얼굴을 갖다 대니

달콤하고 그윽한 향이 휘감긴다. 찰칵찰칵...

또 시작이다 싶은지 J는 저만치서 꽃에다

뭐라고 감탄을 질러대는 나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는다. 가뭄에도 하늘정원의 식물들은 오히려

더 짙은 향기를 품고 내뱉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태양이 산 너머에서 떠오르는 중이다.

나는 왜 이렇게 color에 심하게 매혹되는지?

3월엔  맑고 깨끗한 lemon yellow에

4월엔 시원하고 세련된  blue violet에

5월엔 나비의 날개를 닮은 양귀비의

            bright rose scarlet lake에

6월엔 셀 수 없이 많은 색들의 혼합인 백일홍에

7월엔 온갖 색들의 뒤섞임에

8월엔 채송화와 패랭이 빈카와 과꽃

           opera와 magenta에....


엄청 찍어대던 칡꽃 사진에 만족하며 대문에

들어서니 얇은 광목 같은 다투라가 피어나 있다.

-나는 또 얼마나 흰색을 사랑하는가?

저만치 부용꽃을 닮은 커다란 연노랑 황촉규가

나를 서성이게 한다. 

9월이 오면 깊고 풍성한 brown과 gold color가

세상을 향해 나부낄 것이다.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물어온다면?

"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다 좋아합니다."



채집한 꽃들은 그늘에서 천천히 건조되어 한겨울

까지 마실 차가 될 것이다. 좋아하는 방문객들과의

수다에  요긴한 준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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