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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Jan 23. 2017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눈

한곂씩 떠내는 얇은 한지처럼 회오리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것들



 침대 모퉁이에 앉아 창 밖 금빛 해오름바라본다. 시린 눈 밭이 끝없이 펼쳐진 작은 동네. 창문 턱 아래 라일락 동산에는, 여름에 눈처럼 꽃을 피운다 하여 붙여진 이름 '하설초'를 눈이 덮고 있다. 도라지는 한해에 두 번씩 꽃을 피우고는 제자리에 꼿꼿이 말라져 있고.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채송화가, 땅 속과 강 자갈 어디에선가 겨울잠을 잘 것이다. 추위가 다 끝나면 작은 알갱이를 깨고 뿌리를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쉴 새 없이 꽃을 피우겠지?



 한겨울에 황열(Yellow fever)을 앓다니? 상상조차 힘든 땅 아프리카를 가기 위한 준비는 국립의료원에서의 예방접종으로 시작했다. J와 나는 피곤한 건지 추워서 그런 건지 아니황열 접종 후유증인지 며칠 동안 간헐적으로 뼈마디가 쑤시고, 두통에, 손 발이 뜨거웠다가 정신이 어질어질 해지는 현상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도 Y의 개인 전시회를  어제  다녀온 건 잘한 결정이었다.


 오늘은 차바퀴가 헛돌 것 같아 길을 나서기 어렵다. 면에서 나온 제설차는 앞으로는 눈을 길가로 밀어내고, 뒤로는  자동장치로 모래를 흩뿌리며 지나가고 있다. 완전한 봄이 되어야 사라질 눈!  눈 덮인 마을 풍경은 고요하다.



 눈 속의 마을은 며칠 동안 정적 속에 있었는데, 정원의 가을 파종 묘목들과 튤립 구근은 찬 공기가 차단된 포근한 눈 아래에서  졸고 있을 것이다. 세덤과 선인장은 수분을 최소화하여 제 몸집을 극한으로 줄여가더니 지금은 마른 시래기 같아졌다. 봄이 오면 다시 물을 올리고 초록으로 변하여 통통한 모습을 찾겠지?


 이럴 때 눈 밭에 토끼가  뛰어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한두 마리 풀어놓는 건 문제가 아니나,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생각하니 갑자기 토끼를 먹겠다고 큰 무리의 산짐승

들이 내려올까 두렵다. 상상만으로 끝낸 이야기다.


 군대 생활의 밤과 새벽 보초 시간이 생각난다며 추운 날씨를 싫어하 J는, 오십을 넘긴 지금에야  몸의 기억 떨쳐내 버린 모양이다. 쌓인 눈 속으로 장화를 신고 푹푹 거리며 다니는 나의 뒤를 따라나선 걸 보면.


 평지에 곱게 쌓여있던 눈들은  바람이 불 때 마다한 지를  한 장씩 얇게  두께로 하늘로 솟구친다. 토네이도의 핵이 지상의 것들을 끌어모아 회오리일으키며 공중으로 올라가듯이! 나뭇가지와 전봇대 지붕 위의 눈들도 칼칼한 가루를 불어 날린다. 멀리 소나무 군락에 내려앉았던 눈가루들은 한순간 안개 폭탄이 터지듯 눈 구름폭발시켰다.



 햇살이 비치니 빛들이 눈 결에서 반짝인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시력이 나빠질 것이다. 기온은  차고 나의 걸음은 눈 길에서 느리다. 겨울에 집에 있으려니 단출한 살림도 무겁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화병을, 나들이가 많은 사람에겐 진주크림과 핸드크림 그리고 모조 진주가 달린 브로치를, 독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수년간 싱크대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던 죽엽청주와 마오타이주를 꺼내  금박 불린 리본으로 묶어 전했다.


 몇 번이나 서울까지 신고 갔던 검정 고무신은 이번 눈에 꽁꽁 얼어붙었다. 크루아상을 데워 녹차 잼과 홍시 잼에 발라 먹기도 하고, 대추와 계피 생강과 말린 우엉을 적당히 배합하여 뭉근한 불로 끓이고 또 끓인 뒤 수시로  마셔댄다. 집 안은 한방차 향기로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사람들에겐 날마다 무슨 일이 생긴다. 누구에 대해서도 걱정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아끼는 사람이 잘되길 바라면서 걱정으로  쇠잔 버리는 건 싫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던
인연이나 일이! 지나고 보면  복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꿈은 해몽이고 인생은 해석이라고 믿는다. 내게 있어 인생을 해석하는 두 축은'전화위복'과'새옹지마'다. 지나고 보니 뜻하지 않은 사고는 모든 것이 순조로울  일어났었는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작고하신 엄마는 '호사다마'를 새기며  신중히 살 것을 내게 당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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