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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pr 26. 2017

이제야 덤덤해진 그녀에게 보내는 선물

거리를 충분히 뒀을 때 낼 수 있는 진심


 그녀는 도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고마웠던 친를 위해 섰던 빚보증으로 파산했던 남편과는 일찍 사별하였다. 지금에야 돌이켜 생각되는 아팠을 그녀의 심정, 하지만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녀를 향한 감정이입을 자제한다. 나는 그녀와 멀리 떨어져 외국에서  때 심정적인 상태가 제일 좋았다. 만약 퇴직하여 우리 부부가 그녀를 위한답시고 그녀 집 근처로 이사를 갔다면 서로가 마음고생이 했을 것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달래는 오일장 좌판에서 검은 비닐봉지에서 조금씩 꺼내 파는 노파에게 샀다.  계산이 얼마 밝은지 얼굴에 드러난 나이와는 달리 흥정이 매서웠다. 버섯은 인근 농장서 재배된 것이고, 미나리는 삼파수 물로 이웃이 기른 것이다. 하우스 안에서 자란 아삭함과 연함 대신 조금 질기고 향은 강하다. 이런 채소들은 그녀의 편리하지만 정서적 충족이 아쉬운 도시생활에 약효가 있을 듯하다.



  머위는 잎과 줄기가 다 연하다.  민들레는 뿌리를 남겨두고 칼로 쓱쓱 잘랐다. 사람들은 꽃을 좀처럼 먹지 않지만 나는 식용 꽃에 탐닉한다. 잠시만 물에 담가 두어도 민들레는 꽃이 홀씨가 되어 풀풀 날리는데, 그러기 전에 봉투넣어 포장했다. 난생처음 머위를 무쳐 먹고 볶음밥에 싸서도 먹어보니 낯선 상큼함이 좋다. 올해로 팔순인 그녀에게 머위와 민들레는 그리 어린 시절 '고향의 봄날' 아닐까?



 산벚나무가 둘러싸인 그늘에서 자라고 있는 쑥은 연하고 향도 부드럽기 그지없다. 쌀뜨물 이용법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생 쌀을 물에 불린 뒤 믹서기에 갈아 국물로 쓰니 뽀얗고 구수하다. 집 둘레길을 꽃 길로 만드는 중이라 쑥을 뿌리째 뽑아내야 하기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며 서두른다. 총총 채 썰어 쌀뜨물에 된장을 푼 국물에 먹기 전에 넣으면 파릇한 쑥국이 된다. 흰색 민들레는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야생초다. 대문 앞에서 뿌리째 다섯 포기 정도를 뽑았는데, 아마도 그녀는 아파트 옥상 화분에 흰민들레 뿌리를 심어 두고 꽃과 잎을 즐길 것이다.


 양반가로 유명한 안동 권 씨인 그녀! 고향을 떠난 지 70년이 지났건만 몇 년 전 함께 여행 갔던 그곳에서 그녀는 바로 어린 시절 소녀로 돌아갔다. 얼마나 산과 들의 나물들을 좋아하던지! 지금껏 한 번도 가까이해본 적 없는 이 나물을 이젠 그녀와 나를 위해 켄다.  제초제를 쓰지 않다 보니 집 주변 넓은 땅에는 수확이랄 건 없고 풀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알고 보면 이 잡초들엔 약효와 영양가가 높고, 자연의 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특별한 야채들임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안부와 마지막 인사를 큰 글씨로

뒤, 말린 민들레 뿌리 까지를 넣어 포장했다. 올해 들어 세 번째 보내는 나물 모둠이다.


 그녀는 가까이하기엔 버거우나 지금서야 입장이 이해되는 사랑스러운 나의 시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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