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도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고마웠던 친구를 위해 섰던 빚보증으로 파산했던 남편과는 일찍 사별하였다. 지금에야 돌이켜생각되는 아팠을 그녀의 심정, 하지만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녀를 향한감정이입을자제한다. 나는 그녀와 멀리 떨어져 외국에서 지냈을 때 심정적인 상태가 제일 좋았다. 만약 퇴직하여우리부부가 그녀를 위한답시고 그녀 집근처로이사를 갔다면 서로가 마음고생이심했을 것이다.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달래는 오일장 좌판에서 검은 비닐봉지에서조금씩꺼내 파는 노파에게 샀다. 계산이 얼마나밝은지얼굴에 드러난 나이와는 달리 흥정이 매서웠다. 버섯은 인근 농장에서 재배된 것이고,미나리는 삼파수 물로 이웃이 기른 것이다. 하우스 안에서자란 아삭함과 연함 대신 조금 질기고향은 강하다. 이런 채소들은 그녀의 편리하지만 정서적 충족이아쉬운 도시생활에 약효가 있을듯하다.
봄머위는 잎과 줄기가 다 연하다. 민들레는 뿌리를 남겨두고 칼로 쓱쓱 잘랐다.사람들은꽃을 좀처럼 먹지 않지만 나는 식용 꽃에 탐닉한다. 잠시만 물에 담가 두어도 민들레는꽃이 홀씨가 되어 풀풀 날리는데, 그러기 전에 봉투에 넣어 포장했다. 난생처음 머위를 무쳐먹고볶음밥에싸서도 먹어보니 낯선 상큼함이좋다.올해로 팔순인 그녀에게 머위와민들레는그리운어린 시절 '고향의봄날' 아닐까?
산벚나무가 둘러싸인 그늘에서 자라고 있는 쑥은 연하고 향도 부드럽기 그지없다. 쌀뜨물 이용법이아직은익숙하지 않아 생 쌀을 물에불린 뒤 믹서기에 갈아국물로 쓰니 뽀얗고 구수하다. 집 둘레길을 꽃 길로 만드는 중이라 쑥을뿌리째 뽑아내야 하기에 일석이조의 효과를노리며 서두른다. 총총 채 썰어쌀뜨물에 된장을 푼 국물에 먹기 전에 넣으면 파릇한 쑥국이 된다. 흰색 민들레는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야생초다. 대문 앞에서 뿌리째 다섯 포기 정도를 뽑았는데, 아마도 그녀는 아파트 옥상 화분에 흰민들레뿌리를 심어 두고 꽃과 잎을 즐길 것이다.
양반가로 유명한 안동 권 씨인 그녀! 고향을 떠난 지70년이 지났건만 몇 년 전 함께 여행 갔던그곳에서 그녀는 바로 어린 시절소녀로 돌아갔다. 얼마나산과 들의 나물들을 좋아하던지! 지금껏 한 번도가까이해본 적 없는 이 나물을 이젠그녀와 나를 위해 켄다. 제초제를 쓰지않다 보니 집 주변 넓은땅에는 수확이랄 건 없고 풀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알고 보면 이 잡초들엔 약효와 영양가가 높고, 자연의 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특별한 야채들임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안부와 마지막 인사를 큰 글씨로 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