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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pr 07. 2018

취미로 새롭게 찾은 나

모란을 그리며 만난 엄마


한번 보면 잊히질 않았다. 나무의 크기와

상관없이 꽃은 참으로 컸다. 생전에 엄마를

만나러 가던 친정집 한편엔 푹신하고 깊은

(낙엽으로 만든) 속에서 모란이 피어났다.

꽃만 아니라 잎의 시원한 형상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수려함이었다.



항상 그림이 좋았던 나였다. 꽃과 나무를

심고 땅의 이모저모를 쓰임에 맞게 활용

하는 것 이상으로 그림이 좋아 아크릴화,

수채화, 수묵산수화, 유화, 민화 까지를

조금씩 해보고 있다. 대부분의 장르에서 난

훅 빠지는 경험을 했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림이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하기 일쑤다.


미술을 전공한 지인들 중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붓을 들게 만들기도 하고 붓을

꺾고 멀리하게 만드는 걸까? 입시 준비와

성적 대학 전공 과정 중에 즐거움이 빠졌거나

점수에 맞춰 학과를 정했던 게 이유 아닐까?



퇴직 후 여유가 생겨 원하던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나는 엄청나게 몰입하는 나와 빈번히

감동받는 나를 본다. '그냥 그리는 일이

좋기 때문'에 얻게 된 덤이다. '스스로 좋아서

한다'의 가치는 멀리 길게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임을 느낀다.


3월에 처음으로 시작한  민화의 2번째

그림 초를 뜨고 채색하며 새로운 체험 중

이다. 영화 제목처럼 '깊고 푸른 밤'이 창

앞에 서리고 나서야 모란 꽃술을  찍었고

작업은 끝났다. 모란꽃 리스가 완성되었다. 

종이에 먹으로 본을 떠 물감에 아교와

물을 적정 비율로 섞어 발색을 본 뒤 여러

번 겹쳐 칠하다 만나게 된 색과 한 송이

두 송이.....


흰 꽃잎 바탕에 연지를

흰 꽃잎 바탕에 가지 색을

다홍과 홍매 바탕에 홍매에 먹을 더했고

노랑 잎에는 황토 잎끝엔 대저

초록엔 노랑을 섞고 두 번째엔 수감을 더하니

텅 빈 백지에서 마음으로 그리던 모란 다발이

완성되었다.


끝낸 그림을 바라보니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 진다. 민화 역시 다른 작업과 마찬

가지로 기존의 것에 개인의 취향과 새로운

시도들이 덧붙여져 문화와 당대 사람들의

속내를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 떠난 엄마가 채색하는 내내 나의 주변에

머무는 듯했던 Miracle time이기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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