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의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모마일 Mar 21. 2022

성장, 잔인하고 아름다운

나무와 인간집단의 삶이  참 닮았다

산의 능선을 바라보면 줄지어선 나무들의 키가 약속한 듯 똑같다. 가지치기를 한 것도 아니고 같은 수종의 나무들도 아닌데 어쩜 저렇게 똑같을까?

어릴 때부터 느꼈던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한참 뒤 [나무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 나무들은 말도 없고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자라기 때문에 몹시 수동적인 생물로 느껴지지만 실상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특히 숲 속에 밀집하여 자라는 나무끼리는 땅 속에서 뿌리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마치 혈관처럼 니것내것 구분없이 이어진 모양새인데, 지상의 상황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 특정성분의 수액ㅡ동물로 치면 호르몬ㅡ을 교환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해충이 나뭇잎을 갉아먹고 있어. 어서 몰아내자. 이렇게 합심하여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것이 대표적인데 다른 상황도 있다.

 야, 너 혼자 너무 가지를 높이 뻗는 거 아니니.

다른 애들 햇빛 가리잖아.

오른쪽의 자작나무는 얼마전 새끼묘목도 옆에서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불장군같은 한 그루가 이같은 경고를 무시하고 혼자 열심히 키를 높이려 한다면? 나머지 나무들이 힘을 합쳐  뿌리를 공격해서 흙 속 양분 흡수를 막아서 결국 말라죽게 만든다고 한다. 한마디로 '튀면 죽는다'. 땅 속의 양분과 햇빛은 나무에게 두 가지 중요햐 생명줄이니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한 작동원리인 셈이다. 우리가 보는 능선의 고른 나뭇가지들이 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가끔은 이런 전투에서 살아남아 독보적으로 쑥쑥 자라는 나무가 있고, 이 경우 전세는 역전된다. 단독 성장의 임계점을 돌파한 나무는 뿌리도 마구 성장하여 흙 속의 양분을 좍좍 흡수하여 상대적으로 약한 뿌리를 가진 주변의 나무들을 고사시킨다. 나무에게도 호흡을 자유롭게 할 공간이 필요하니 강하고 큰 나무가 더 풍부한 햇빛과 함께 더 여유있는 공간을 가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나는 항상 나무같은 삶을 꿈꿨다. 늘 높은 하늘을 향해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근면함을 가지고 싶었고, 한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우뚝 서서 나무처럼  큰 그늘을 드리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나니 '성장'이란 말이 잔인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숲 속의 나무들도 다수의 공평한 성장을 목적으로 소수의 성장욕구를 좌절시키고, 어쩌다 독자적 성장에 성공한 나무는 주변의 나무들을 희생한 결과였을 뿐이다. 넓어진 그늘은 일부 동물에게는 휴식처일지 몰라도 다른 식물에게는 햇빛이  들지 않는  죽음의 공간이다.


나는 어떤 나무였을까? 성장속도가  빠르게 '튀는' 나무를 억압하는 다수의 나무였을까. 희생당한 소수였을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 주변을 말려버리는 독불장군같은 큰 나무가 되어버리려나?


늘 되돌아보고 살필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몸으로부터 나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