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의 터닝포인트
구름 한 점 없이 시베리아고기압의 파란 하늘이 시린 아침,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다. 학부모로서 학교는 언제나 학생시절보다 더 긴장된다. 하지만 발랄하고 귀여운 아이들,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친밀하게 지내는 선생님들 모습을 보며 마음 한 구석 긴장으로 얼어있던 얼음조각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졸업장을 한 명 한 명 악수하며 나눠주시는 교장선생님, 그 옆에서 담임선생님이 역시 한 명 한 명 따뜻이 안아주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여학생들은 두 팔을 벌리고 종종 뛰어가 선생님께 안기고,
남학생들은 큰 절을 올리고는 자기보다 키가 작은 여자선생님을 의젓하게 포옹하고 제 자리로 들어갔다. 나는 학생들이 선생님과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포옹하는 모습이 낯설고도 신기하고 또 부러우면서도 다행스러웠다.
아이들이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선생님들과도 따뜻하게 지내고 학교에서도 즐겁게 지냈겠구나. 이런 추억 이런 마음이 가슴 한 켠에 소중히 자리할 테니 찬바람 몰아치는 입시전쟁터로 뛰어들어도 꿋꿋이 버티며 나아가겠구나. 아니, AI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인간다운 마음을 주고받은 경험이 있으니 인간으로서 가치를 잃지 않겠구나...
며칠 전 아이가 담임선생님과 장난친 얘기를 집에서 얘기해주며 즐거워했다.
ㅡ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참 이뻐하시는구나.
ㅡ그럼요~~ 우리 선생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주시거든요!!
아스퍼거 특유의 문어체 문장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아들에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사랑받는 아이의 자부심 넘치는 얼굴빛은 꽃보다 곱고 귀하다. 정말 소중한 중3 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구나 싶어 가슴이 뜨끈했더랬다.
지난 주에는 3학년 학생들이 그동안 맛난 밥 해주신 급식 이모님들께도 인사드리고 식당에서 눈물을 글썽인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졸업식 전 동영상 속의 아이들은 뛰고 웃고 놀라고 기뻐하는 한 편 공부에 집중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잘 자라고 있었다. 그동안 미디어의 험한 뉴스에 가슴 철렁하며 아이의 학교생활을 전전긍긍하며 바라보던 나의 걱정은 정말 기우였다.
부모가 물러나는 만큼, 그 공간만큼 아이가 자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나의 불안 때문에 더디게 물러났다. 다행히 아이는 내가 물러나는 속도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옆에는 부모가 아닌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고 서로 손잡아주고 의지하며 같이 자라났다. 그 감사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엄마들의 단톡방에서는 며칠 전부터 서로서로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하고 그동안 수고했다는 덕담과 감사의 인사가 바삐 오갔다. 느슨한 관계이지만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엄마들끼리 나눈 시간과 여러 도움 덕에 우왕좌왕 정신없는 나같은 워킹맘이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지난주 성당 미사시간의 신부님 강론 말씀이 더더욱 깊이 다가온다. 신부님의 강론은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는 모두 희망을 가진다는 평범한 명제로 시작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희망, 늘 주변과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는 희망. 희망 속에서 아이는 환히 웃으며 씩씩하게 성장한다. 시간이 흐르면 부모의 희망은 기대로 바뀐다. 중간고사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기대, 인서울 대학을 진학하기를 바라는 기대,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라는 기대.... 하지만 기대란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고 부모의 욕망이 투사되기 마련이다. 아이의 순수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은 희망이고, 욕망을 내려놓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열려 있는 축복과 희망 속에서야말로 아이들은 아니 인간은 한정없이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어간다. 앞으로 3년 고등학교에서의 시간은 중학교만큼 화사하고 아기자기하지는 않겠지만 의젓하고 든든하게 성장해나가기를. 나는 기쁘게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나며 지켜보겠다.
지난 3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