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와 나

4화. 엄마를 위한 촬영 현장 ③

두 번째. 낮 촬영만 하기

by 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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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엄마를 위한 촬영 현장 ③


두 번째. 낮 촬영만 하기


두 번째 작품은 단편영화 촬영장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다룬 14분 정도의 짧은 단편영화 <거기 모든 이들>이다. 주연배우만 챙기는 밉살스러운 감독으로 인해 스태프들과 단역들의 원성이 자자한데, 그 와중에 감독이 몰래 챙겨준 고급 도시락을 먹은 주연배우가 배탈이 나서 촬영이 중단되기에까지 이른다.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 안과 밖에서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스태프들의 노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영화 밖 또 다른 이야기,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한 나와 가족들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거기 모든 이들>은 시나리오를 쓴 작가님, 스태프들과 유대가 깊어 참여하게 된 영화다. 또 모두가 내가 두 돌이 안 된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 허용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적기도 했다. 그리고 주요 촬영지가 의성이라 시댁과 가까웠고, 시나리오 안에 밤 촬영이 없어서 시원이가 자는 시간인 밤 9시 전까지는 퇴근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참여했었던 영화 촬영 현장을 돌이켜보았을 때, 낮 촬영만 하는 영화는 없었다. 물론 이번 영화처럼 잠깐의 해프닝을 다룬 스토리는 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 안에 모든 장면이 ‘낮(DAY)’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실내 촬영은 밤을 낮처럼, 혹은 낮을 밤처럼 속여서 촬영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촬영 시간은 새벽부터 새벽까지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야외와 다름없는 커다란 마늘 창고가 촬영지로 선정된 데다가 촬영팀의 규모가 작아서 밤을 낮으로 속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촬영 시간이 늘어나면 제작비도 늘어나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게 된 이 조건이 나에게는 좋게 작용하여 하나의 기회로 다가왔다.


집을 며칠 비우는 일이다 보니 먼저 남편과 상의한 후, 시댁 어른들께 시원이를 부탁드리고 영화 촬영에 합류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추수가 한창인 가을이라 바쁜 시기였는데도 시부모님께서는 흔쾌히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평소 내가 함께 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께 튕김의 매력을 선사하는 시원이는 내가 없으면 할아버지께 착 달라붙어서 ‘할아버지 최고야’ 하며 그렇게나 애교를 부린다고 한다. 항상 내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시부모님께서는 이번에도 시원이는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며칠 동안 애교 만점인 시원이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기쁨도 크신 듯했다. 요즘도 시원이가 보고 싶으시면 “요즘에는 일 없나?” 연락을 하시거나,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달력에 표시해 놓은 내 스케줄을 확인하신다.


“이날은 시원이 누가 봐주노? 내가 와야 되나?”


아무튼, 저녁 6시라는 빠른 퇴근 시간과 시부모님께서 육아를 도와주신 덕분에 두 번째 영화 촬영은 첫 번째 영화 <피바람이 분다>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진행됐다. 시원이는 낮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신나게 놀고, 밤에는 편안한 엄마 품속에서 잠이 드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부모님께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의 애교를 독차지하실 수 있었고, 나는 촬영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모두 가족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시도들이었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항상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 일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도전해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도전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영화 촬영 현장을 그리워하면서 다른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사라지는 기회들을 전파하며 늘 불행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 같다. 도전해서 참 다행이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본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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