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와 나

12화. 해피이벤트 ② - 실전 : 임신부터 출산까지

혼돈, 두려움, 분노, 다급함

by 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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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해피이벤트 ② - 실전 : 임신부터 출산까지


혼돈, 두려움, 분노, 다급함


아기가 생긴 것은 내 인생에 있어 해피한 이벤트지만, 여성 영화인에게 아기가 생긴다는 것은 영화를 그만두게 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초반에 굉장한 불안을 경험했다.


- 임신 4주차

처음 임신 여부를 테스트하고, 진단을 받았을 때다.

내게 일어난 일이 진짜인지 아닌지 아직 얼떨떨했다.

더 이상 영화는 못하겠구나 싶어서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아이가 생겼음을 축하만 해주니 괴리감이 상당했다.


- 임신 5주차

처음으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아직 내 배 속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이 실감은 안 났다.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을 미루고 있었는데 아기가 생겼으니 더 미룰 수 없었다.

배가 더 부르기 전에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급하게 상견례와 결혼식을 준비 하느라 바빴고, 그 와중에도 아기를 위해 해야 하는 건 어찌나 많은지 머리가 아팠다. 다 귀찮고 짜증났다.


- 임신 6주차

코로나가 아직 한창이던 시절, 서울로 행사 취재 출장을 갔다.

코로나에 걸리면 아기는 어쩌지, 무리한 일정으로 아기에게 해가 되면 어쩌지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 임신 7주차

커피를 마시는데 죄책감이 너무 컸다.

내가 뭘 하든 아기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 임신 8주차

하리보 젤리곰 같이 생긴 태아를 보며 처음으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애정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 임신 9주차

지원사업을 받아 진행하던 일을 취소할 수가 없어서 이틀동안 짧은 단편 영화를 촬영 했다.

촬영감독을 맡아서 장비를 옮기고 하면 무리가 될까 걱정했는데, 배 땡김도 없고 컨디션이 괜찮았다.

임신을 한다고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 임신 11주차

강의를 마치고 지하철을 탔는데 배가 땡겨서 길에서 한참을 쉬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별로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아팠다.

임신을 하면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무리가 안 가는 게 아닌 것을 알았다.

좌절했다.


- 임신 12주차

입덧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서 대중교통 타기가 더 힘들어졌다.

짜증났다.


- 임신 14주차

고민하다가 입덧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어도 부작용이 없다고 하니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커피도 하루 한 잔은 괜찮다고 해서 디카페인 말고 그냥 커피를 마셨다.


- 임신 16주차

결혼식을 했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드레스샵 원장님이 라인을 살려야 한다며 드레스 끈을 한 번 더 조였다. 결국 힘들어서 신부대기실에서 토를 하고 드레스를 풀었다. 힘들었다.


- 임신 18주차 ~ 37주차

컨디션이 임신 전과 엇비슷하게 돌아왔다.

아기를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걷기 운동도 하고, 이사도 했다.

출산을 위해 왁싱도 주기적으로 받고, 임신·육아교실도 몇 차례 들었다. 그곳에서 경품으로 카시트를 타서 돈이 굳었다.

또 출산 후를 위해 미디어 강사로서의 이력을 만들고, 홍보를 위한 블로그도 만들었다.

그 와중에 창작 활동도 하고 싶어서 배리어프리 활동을 시작하고, 마을방송국에서 라디오도 만들기 시작했다.

산책삼아 나갔던 북페어 나들이에서 육아·예술병행에 관한 책 <자아 예술가 엄마>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혼자 캠코더를 들고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 임신 38주차

배달된 육아 용품들의 박스를 뜯고, 아기 옷을 빨아 정리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캠코더로 촬영했다.

어느때 보다 몸이 무거웠지만 편했고, 태동으로 아이와 장난을 치며 놀았다.

병원 검진에서 이미 입구의 20%가 열려있다고 해서 언제 아기가 나올지 모르는 불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 임신 39주차

가진통인가 싶어서 새언니가 부리나케 달려와줬다.

진통을 촉진한다고 한참을 짐볼 운동을 시켜주다가 갔다.

언니에게 너무 고마운데 진짜 애기가 나올까봐 무서웠다.


- 임신 40주차

그날은 이상하게 둘 다 새벽까지 잠을 안 잤다.

나는 웹소설을 보고 있었고, 쭌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진통이 왔다.

새벽 4시에 병원으로 가니 입구가 50% 열렸다고 했다.

캠코더를 챙겨갔었는데, 촬영할 정신이 없었다.

진짜 진통이 시작되자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숨 쉬는 법도 잊었다.

바로 무통주사를 맞고 편안한 상태로 아기를 낳았다.

무통주사를 맞을 때 척수액이 새는 바람에 두통 때문에 고생하고, 부작용으로 허리가 일 년동안 아팠지만 다시 돌아가도 무통주사를 맞는 게 나을거 같다는 생각이다. 진통은 참을 게 못 된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본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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