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와 나

13화. 해피이벤트 ③ - 실전 : 출산부터 첫 돌까지

고립, 우울, 처절, 절박, 용기, 당돌, 담대

by 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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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해피이벤트 ③ - 실전 : 출산부터 첫 돌까지


고립, 우울, 처절, 절박, 용기, 당돌, 담대


출산을 하니 몸이 또 한 차례 변했다. 손발이 코끼리처럼 퉁퉁 붓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피부가 얇아져 조금만 긁어도 피투성이가 되고, 길고 긴 생리를 하게 되고(오로가 빠지는 과정), 절개한 질이 회복되기 전까지 화장실도 조심하게 되고, 또 요실금도 생겼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해치는 치욕적인 변화들이 많아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우울감이 밀려 들어와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기를 안아 달래며 업무 전화를 받고, 잠든 아기를 무릎에다가 올려 둔 채 시나리오를 썼다. 짬이 조금이라도 나면 일을 하니, 쉴 시간도 없었다. 체력은 늘 간당간당했고 몸의 회복은 자연스레 더뎌졌다. 몸이 피로하니 신경은 늘 예민했고, 남편이 뭘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그냥 미웠다.


- 1일~3일

출산 직후 입원실로 내려갔다.

피가 계속 나와서 하의 실종 상태로 엉덩이 밑에 패드를 대고 있었다.

일단 하의실종인 상태가 굉장히 부끄러웠고, 나는 척추주사(무통주사)를 맞아서 움직일 수 없으니 남편이 계속 패드를 갈아줘야 하는 게 수치스러웠다.

산부인과는 검진이나 출산 과정 때도 그랬지만 한결같이 내게 수치심을 줬다.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나는 무통주사 부작용으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다. 척수액이 샌 것에 대한 처치를 하고 나서야 조금씩 괜찮아졌다. 몸이 불편하니 아기 면회도 못 가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갈 때만 몸을 일으켰는데, 처음 화장실을 갔을 때의 무서움과 고통이 아직도 생생한 것 같다.

입원 기간 동안은 출산 소식을 알리느라 바빴는데다가 남편이 계속 옆에 같이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지만 이런 저런 모습들을 보이기가 부끄러웠고, 도넛 방석을 미처 못 사서 앉기가 너무 힘들었다.

머리가 아파서 아기를 보러 못 가는 게 아쉬웠다.


- 4일~30일

아직 이름도 없이 ‘김현미 아기’라고 적힌 팔찌를 한 갓난아기를 안아 들고 친정으로 향했다. 산후조리원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혼자서 2주 동안 아무도 못 들어오는 방 안에 있으면 너무 답답하고 불편할 것 같아서 엄마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 4남매를 키운 데다가 어린이집 영아반 교사를 오래 해서 갓난아기를 돌보는 데에는 선수였다. 나나 남편은 성인의 손 두 뼘 남짓한 크기의 작은 아기를 보고 있자니 부서질까봐 만지기도 겁이 났는데, 엄마는 요리조리 주무르기도 잘 했다. 쭌은 그런 엄마를 보며 ‘장모님께 부탁한 게 신의 한 수 였다’며 감탄했다.

쭌은 출근을 해야했기 때문에 혼자서 대구에서 지내고, 휴일에는 우리를 보러 왔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아기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여 주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면서 내 몸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첫째로는 절개했던 회음부가 조금씩 아물고 붓기가 빠지면서, 꿰매 놓은 실이 살을 쿡쿡 찔러서 불편했고, 둘째로는 유축기로 젖을 짜는데 젖의 양이 작아서 손가락으로 가슴을 눌러줘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손가락 관절 마디마디가 너무 아팠다. 셋째로는 무통주사의 후유증으로 생긴 허리통증이 있었고, 또 3시간에 한 번씩 모유수유를 할 때 마다 걸리는 시간이 40분으로 너무 느리다보니 한 자세로 오래 있어서 허리, 목, 어깨, 팔, 손목이 다 아팠다.


아기의 황달기가 점점 사라지고, 눈동자도 또렷해질 때 쯤에는 아기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름을 아기에게 불러주며 반응을 살폈다.

20개가 넘는 후보군 중에 ‘시아’와 ‘시원’이로 후보가 좁혀졌고, 고민 끝에 시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에는 엄마와 학교 방학을 맞은 언니(교사)가 새벽 수유도 해주고, 내 말벗도 되어주고, 아기도 같이 돌봐줘서 푹 쉬면서 시나리오 외주 일도 하는 등 평화로운 날을 보냈다.

쭌이 보고 싶은 것 말고는 다 좋았다. 쭌은 100일이 될 때까지 아기를 거창에서 키우자고 했지만, 그러면 쭌이 아기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진다는게 마음에 걸렸고, 2주간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면 육아도 좀 익숙해지지 않을까 해서 다시 대구로 가기로 했다.


- 40일~100일

그냥 쭌의 말을 들을 걸 그랬지.

조카들을 돌봤던 것만 생각하고 육아를 너무 쉽게 봤다.

대구로 오자마자 육아의 지옥 문이 열렸다.

시원이는 싫은 걸 못 참는 아기였다. 화를 많이 냈고, 등 센서가 예민했다. 놀 때도 세워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밤 잠을 재울 때는 더 예민해져서 소리지르며 우는 애를 1~2시간 정도 안아서 리듬을 타야 했다. 통잠은 9개월 때까지 자지 않아서 새벽에 깨지 않고 푹 자는 게 저 당시의 가장 큰 소원이었다.

잠도 못 자고 아기를 돌보다 보면 밥 먹을 시간도 없거니와 입맛이 없어 뭘 먹기도 싫어졌다. 그런데 살은 안 빠지니 짜증이 났다.

체력이 안 받쳐주니 일도 하기가 점점 더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일에서라도 성취감을 얻고 싶어서 기회가 오면 무조건 일을 했다.

시간이 없어서 머리 감기는 사치고, 세수와 양치질도 못 하는 때가 많다.

아기가 손으로 잡아당기거나 입에 넣으면 안 되니 하나로 질끈 묶고, 아기 침과 이유식이 묻은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한 번씩 아기를 안은 채 거울을 보면 깜짝 놀란다.

아기는 매일 씻기고 로션을 바르고, 예쁜 옷을 입혀 반질반질한데 나는 제대로 씻지 못해서 더럽고, 피부도 푸석푸석하고, 꾀죄죄했다.


- 100일~돌

시원이는 포동포동 살이 올라 다루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날도 따뜻해져서 함께 외출하는 일도 잦아졌다.


시원이는 몸으로 하는 건 빠른 편이었다.

뒤집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육아의 난이도가 한층 높아졌다.

다시 되집기를 못하던 때에는 내가 너무 피곤해서 잠에서 깨지 못한 사이 혼자 뒤집기를 할까 봐 너무 무서웠다.

7~8개월 쯤 잡고 서더니 9개월부터는 잘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시원이는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시원이가 다치기라도 할까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무서웠다.


처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댁으로 나들이도 갔다.

조그만한 아기 짐이 뭐 그리 많은지 자동차 트렁크를 꽉 채웠다.

그래도 시댁이나 친정에 가면 시원이를 안아줄 사람이 많으니 잠시라도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가 시댁에 가거나 친언니가 우리집에 놀러 오면 남편과 한 번씩 영화관 데이트를 나가기도 했다. 정말 눈물나게 좋았다.


아이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나는 계속 갈아 넣어졌다.

육아로 인한 고립이 길어질 수록, 우울한 감정에 쉽게 휩싸였다.

그럴수록 처절한 마음에 절박하게 일에 매달렸다.

2주에 한 번씩 한계를 경험했다.

그러면 짐을 싸서 시댁, 친정, 오빠네 집 셋 중에 한 곳으로 도망갔다.

시원이는 예쁨을 많이 받아서 좋고, 가족들은 시원이를 봐서 좋고, 나는 휴식과 충전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친언니는 거의 매주 우리 집에 오거나 같이 거창에 가서 시원이를 돌봐줬고, 새언니는 내가 힘들어 보인다며 필요할 때 마다 시원이를 자기에게 맡겨놓고 일하러 다니라고 계속 부추겼다.


육아를 하면서 원래의 내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는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는 육아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하려면 불편한 것이 많았고, 세상은 육아를 하는 사람에게 맞춰져 있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서 육아를 하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힘을 쏟아야 했다.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시원이가 150일 정도 되었을 즈음에는 온라인으로 육아·예술을 병행하는 엄마들을 만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엄마 예술인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치유도 받고, 용기도 얻었다.

그리고 일부러 미팅이나 행사에 시원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기를 낳았지만 나는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또 많은 직장인들이 나와 같은 양육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나 혼자만의 캠페인이기도 했다.

처음 말을 꺼낼때만 하더라도 담당자가 싫어할까 봐 속으로 조금 겁을 먹기도 했지만, 조금은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로 미팅에 아기를 데려가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본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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