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보다 한 달 먼저 복직한 김지영은 영수와 인연이 깊다. 8년 전 영수와 함께 근무하던 지영은 만삭의 몸으로 힘든 기색 없이 일하던 밝은 동료였다. 이젠 좀 쉬어도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집에서 쉬면 살만 찐다며 끝까지 일하던 직원이었다. 그리고 예정일을 한 달 앞두고 출산휴가를 들어가 6년 만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영수가 태신지구대로 돌아왔을 때, 더욱더 반가웠던 이유는 김지영도 함께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영수 주임님!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셨죠? 건강은 어떠세요?” “천천히 물어봐. 나 이제 어디 안 가.” “너무 반가워서 그렇죠.” “그나저나 6년 만에 사무실 나왔다면서? 아이들 사진 봤는데 너무 이쁘더라.” “이쁘게 키우느라 휴직을 다 썼네요. 호호.”
생글생글 밝은 미소, 부드러운 살가움, 김지영은 여전했다. 그러나 지구대 업무가 그렇듯, 영수와 지영 사이에 큰 여백을 주지 못했다.
‘띠리링. 사건번호 1054.
모르는 여자가 날 때리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긴급신고와 함께 둘 사이의 대화는 일단락되고, 서둘러 순찰차 키를 들고 온 지영은 출동태세를 갖췄다.
“주임님. 저 신고 다녀와서 다시 이야기해요!” “응. 조심하고!”
몇 시간 뒤, 지영은 지구대로 돌아왔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지영은 2층 계단으로 올랐고, 각진 복도 끝을 향한 그녀의 얼굴에 살며시 어둠이 깔렸다.
지영이 자리를 비우자, 지영과 함께 출동한 동료직원은 살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지영 씨, 피혐의자한테 맞았어. 공무집행방해죄도 추가하자고 했는데, 괜찮다네. 그래서 죄명은 추가 안 하고 수사보고서에만 따로 기재했지.”
영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마음이 무거워졌다.
업무의 특성상, 비정상적인 경우의 수를 많이 만난다. 영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치욕적인 욕설은 기본이고, 찰나의 순간 피혐의자가 휘두른 주먹에 맞기도 했다. 영수보다 더한 케이스도 사실 많았다.
그러나, 영수는 후배들은 그런 대우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2층에서 내려온 지영에게 달달한 믹스커피를 건넨 영수는 지영을 마주 보고 앉았다.
“지영아. 우리가 경찰이어도,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수인의무는 없어."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싼 지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공무집행방해죄 추가 안 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이내 지영은 깊은숨을 몰아쉬고 뜨거운 커피를 들이켰다.
밝음이 가득한 지영은 아픈 아이로 6년을 휴직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지영을 닮은, 웃음이 매력적인 지영의 아이는 장애가 있다고 했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털어놓는 지영을 바라보던 영수는 먹먹함과 시림이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겠네.” “아니에요. 저 6년 동안 행복했어요. 그런데요, 지금 좀 힘들어요.” “어떤 점이?” “현장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피혐의자를 피혐의자로 보지 못하고, 안타까움이 앞서요.” “그래서 오늘 공무집행방해죄를 추가 안 했구나.” “네. 6년을 다스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마음이 말랑말랑하네요.” “내가 너를 다 이해한다곤 말 못 해. 하지만, 난 지영이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전과 다르게 장애인에 대한 신고가 늘고 있고 이들을 맞이하는 현장경찰관은 아직 어려움이 가득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지영을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수는 지금 지영이 겪는 혼란이, 동시에 그 특별한 아픔이 현장에서 각별한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라, 믿음을 보탰다.
영수는 서둘러 관련 매뉴얼을 찾기 시작했다. 서류를 뒤적뒤적 살피던 그때, 지영이 다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빨간 오미자였다.
“이영수주임님, 이거 저희 아빠가 직접 만든 오미자인데요. 아까 타주신 믹스커피가 너무 달콤해, 제 마음을 전합니다. 오미자가 항암효과가 있대요. 커피 생각날 때 대신 한잔씩 드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