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난 식당에 발길을 잇는 오래된 손님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단골손님이 있다. 우리는 그를 ‘상습 신고자’라 일컫는다. 오늘도 시작을 그가 알린다.
‘사건번호 1057. 백이 아파트 504동 1010호. 물이 넘치고 있어. 도와줘.’
그리고 이어진 참고사항에 기재된 내용,
‘상습 신고자. 신고이력 확인 요망.’
“아 또 이 사람이네.”
경찰관의 탄식과 함께 사건이 접수됐다.
열려있는 신고 현장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경찰관입니다. 비켜주세요.”
현장에 진입했을 때, 신발장 앞부터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쓰레기 더미와 섞여 있는 음식물, 그리고 그것들은 수돗물과 함께 엉켜 늪을 상상케 했다. 그 속을 바글거리는 바퀴벌레는 마치 제 세상처럼 이곳저곳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발을 디딘 그곳은, 질퍽거리는 불쾌한 촉감과 함께 근무화 밑장을 끌어당겼다. 무질서 속,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정한 기계음을 따라 방 안 깊숙이 진입했다.
긴장감으로 오는 두근거림의 진동은 돌고 돌아 심장의 반동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그때 축축하게 젖은 그곳에는 굉음의 드라이기와 빨갛게 달아오른 인덕션으로 추위를 달래는 신고자가 있었다. 이윽고 그를 둘러싼 전선을 뽑았다.
“당신. 이러다 죽어! 당신만 위험한 게 아니라 모두가 위험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의미 없는 한 곳만 응시했다. 당신 앞에 놓인 지금 이 순간조차 설명할 수 없는 그는 가족도 없이, 무질서 속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중증 정신장애를 겪는 그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어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그리고 몇 년 전 그의 모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증상은 점점 더 깊어져갔다.
집을 청소한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쓰레기를 한데 모아 태우는가 하면, 불필요해진 가전제품을 창밖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의 집은 10층. 아찔한 순간이었다.
더 이상 그를 이곳에 홀로 둘 수 없어, 행정입원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밥은 먹었어요?”
“아니. 배고파 배고파.”
“아픈 곳은 없어요?”
“다 아프지.”
평소 가는 정신과병원을 물었으나, 행정입원 가능한 자리가 없었고, 입원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해, 소방과 동행하여 관외 병원에 도착했다. 사안의 중대성은 선착순 대기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고, 영수는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뭐가 젤 힘드세요?”
“외로워. 엄마 보고 싶어.”
“그래도 엄마 생각해서 더 잘 사셔야지. 자꾸 이러시면 안 돼.”
“그렇지.”
그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고, 더 이상 어떠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1시간이 흐른 후 진료실에 동행한 영수는 사안의 중대성을 건넸고 여러 검사 후 그는 입원을 피할 수 없다는 담당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그리고 영수는 그에게 재차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오늘부터 이곳에서 지낼 거고, 이곳에서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나오세요.”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간호사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자타의 위험이 가득한 그에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뿐이었다. 앞으로 일정시간 이곳에서 머무를 그로 인해, 태신지구대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골칫거리 단골이 일정시간 우리와 떨어졌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을볕이 살짝 차가워진 바람과 어우러졌다. 그리고 백이 아파트 앞을 스쳐가던 끝에 김 순경은 단골손님이 떠올랐는지, 영수에게 건넸다.
“그 입원했던 남자, 병원에서 나왔을까요?”
“글쎄. 답답하니깐 오래 있진 않을 거 같고. 그런데 신고가 없는 거 보니 아직 병원에 있으려나.”
“병원에서 치료 잘 받고 조금 나아져서 나와야 할 텐데. 그나저나 바람이 제법 차가워지네요. 가을이 지나가려나 봐요.”
“그러게.”
영수는 가을이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이 반갑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끝이, 더불어 숙명이라 여겼던 경찰이 그에서 멀어지는 것이 달갑진 않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평온함은 맑지 않은 알림으로 정적을 깬다.
‘띠리링. 사건번호 1248. 백이 아파트 504동 1010호에 이상한 냄새가 나요.’
단골손님이 돌아왔다. 그러나 영수 등줄기에는 불쾌한 긴장감이 솟구친다.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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