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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Dec 06. 2023

#1 다시, 지구대


영수의 오늘 아침은 어제와 달랐다. 1년 만에 입는 근무복의 뻣뻣함에 애잔함이 솟구친다. 깊이 파인 주름과 헐거워진 남은 볼살 사이를 타고 내려온 뜨끈한 눈물은 어깨에 박힌 참수리처럼, 근무복 소매에 오늘의 감사함으로 자국을 남겼다.     


“여보 식사하고 가세요.”

“아니야. 다녀와서 편안하게 먹을게.”

사실 영수는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아니, 손꼽아 기다린 오늘을 헛배로 두리둥실 채우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알맞다.     


살랑이는 바람은 시리지 않았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노란 은행잎과 함께 녹진해졌다.

그렇게 영수는 지구대로 발길을 향하고 있었다.     



앞으로 100일을 함께할 태신지구대는 영수에게 익숙한 곳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임 경찰일 때 첫 발령지였던 이곳의 온기는 30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퇴직을 앞둔 이 순간 이곳이 더 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라도 젊고 건강했을 때의 ‘순경 이영수’를 만나고 싶었다.     


이윽고, 깊은 숨을 고르고 지구대 문을 열었다.    

      



3층으로 이뤄진 태신지구대는 시간이 멎은 듯 낡은 정겨움이 가득했고 그곳의 대장님 또한 그러했다.


“선배님! 복직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대장님. 선배님이라뇨. 말씀 편히 하세요.”

“선배님을 당연히 선배님이라 부르죠. 건강은 어떠세요?”     


영수가 5년 차 일 때, 신임 순경으로 들어왔던 최승우는 첫인상부터 똘똘한 녀석이었다. 그 당시 사수로 곁에 붙어 일을 가르칠 때, 하나도 놓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던 그 최승우가 어느새 지구대 대장을 하고 있으니, 영수 마음에 기특한 뭉클함이 차올랐다.     


“선배님, 익히 잘 아시겠지만, 저희 일이 쉽지 않잖아요. 저를 포함 직원들은, 선배님이 일 열심히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안 되죠.”

“그저, 지난 베테랑 형사 때 노하우만 후배들에게 잘 알려주세요. 그럼 충분합니다.”

“제가 후배들 잘 보조하겠습니다.



건강에 자신 있던 영수에게 갑자기 찾아온 암은 순식간에 기력을 뺏어갔다. 그 당시 영수는 암이 발병했다는 사실보다, 더 이상 현장에서 뛸 수 없는 경찰이 된다는 사실이 더 서글펐다. 그래서 돌아오고 싶어도, 차마 염치가 없어 복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수에게 먼저 연락을 건넨 사람은 지구대장 최승우였다.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최대장은 영수에게 지구대 상황근무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극구 거절하는 영수를 마지막까지 설득한 사람이다.

그렇게 영수는 남은 100일을 태신지구대와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수의 피부결이 먼저 반응하는 익숙한 알람이 울린다.


띠리링. 태신지구대. 태신지구대 긴급출동.

‘사건번호 1234. 호화아파트 101동 12층. 신원미상 여성 자살시도. 긴급출동.’     



죽음의 문턱에서 갓 벗어난 영수는,

첫 사건으로 죽음의 기로에 선 여성을 맞이한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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