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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해슬 Jul 23. 2021

일탈과 반항 그 사이에서

학창 시절 내 일탈은 딱 한 번이다. 살면서 딱 한번 반항을 했다는 것도 참 놀랍지 않은가?

부모님의 불화가 지속되면서 중학생 때부터 나는 의젓한 첫째 딸이 되어야 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남동생이 온몸으로 반항을 했던 탓이다. 엄마는 나를 붙잡고 “너라도 사고 치지 않고 학교 잘 다녀 다행이다.”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언젠가 본 심리학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아들은 엄마의 감정과 분리되지만, 딸은 엄마의 감정에 공감해 엄마의 삶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이른바 엄마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상처 받은 아이인 상태로 몸만 커지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을 계속 듣고 크는데 어떻게 반항을 할 수 있었겠는가.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팍팍한지 아는데. 지금 아이를 키우는 내가 당시를 회상해보니 엄마는 정말이지 이를 악물고 버텨내셨던 것 같다. 가정을 지키려고, 우리를 놓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래서 가난의 바닥을 치고 올라와서 여기까지 왔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주변의 기대와 시선 때문에 착한 아이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엄마의 고생을 알고 이해했기에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역시 어린아이였기에 가정불화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있었다. 지독한 상황에 힘든 내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부모님도 너무나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고, 친구도 선생님도 적당한 상담자가 아니었다. 난 속으로 곪아가는 상처를 가진 채 겉으로는 사춘기를 무난히 보내는 척했던 것 같다.



내 일탈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고 3이 되기 전에, 방학 때 다들 나와서 특별 보충수업을 계속했었다. 그때 내가 했던 일탈은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이었다. 엄마에겐 학교에 간다고 말했지만, 나는 학교로 가지 않고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면서 지하 식당에 내려가서 밥도 사 먹고 간식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 뒤, 하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이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담임쌤과 학년주임쌤에게 이메일로 편지를 썼다. ‘교실에 앉아서 수업하려니 너무 답답해요. 저 스스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도서관에서 좀 해볼게요.’ 이런 식으로 통보를 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자기주도학습으로 공부를 할 셈이었다. 한 달짜리 계획표도 세웠지만, 막상 도서관에 가니 공부 대신 책만 읽었다. 문제는 이 책이 바로 로맨스 소설이었고, 하루 종일 읽고 있으니 공부는커녕 대학 가서 어떤 남자 친구를 만날 지에 대한 환상만 키웠다.


일주일 만에 자괴감에 빠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게 뭐 하는 걸까? 내가 공부하려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온 건데 이렇게 놀기만 하고.. 하아, 진짜 나 바보 같다..’


자기 비하에 빠지면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지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백기를 들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날 어이없게 쳐다보던 순둥이 담임쌤 - 총각 남자분이셨는데 여고에서 처음 근무하며 많이 힘들어하셨다 - 과 콧김만 내뿜으며 뭐라 말을 할 듯 말 듯 하시더니 결국엔 아무 말도 안 하셨던 학년주임쌤. 그리고 학교에 돌아와서 처음 시작된 수업은 국어 과목이었는데, 내가 제일 존경하는 국어 선생님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고 살짝 웃으시면서 “이제 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반, 아니 2학년 전체에서 일주일 동안 빠진 사람은 예체능을 준비하는 아이들 빼곤 나밖에 없었을 테니 기억할 만하셨을 것 같다.


별 것 아닌 이 일탈은 나에겐 최초의 반항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일주일 동안 학교를 안 간 줄 전혀 모르셨고, 지금도 모르신다. 그 뒤로도 말을 한 적이 없으므로. 그땐 가족 모두 너무 힘든 시기였고, 각자 방황하던 시기였다. 질이 안 좋은 무리들과 뭉쳐 다니며 패싸움까지 휘말렸던 내 동생, 매일 술 마시고 소리치고 싸우는 아빠, 그런 아빠와 싸우며 눈물을 떨군 엄마, 그걸 지켜보며 늘 조마조마했지만 학교에 가선 아무렇지 않아야만 했던 나까지. 갈대처럼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다들 버텨냈고 상처는 봉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희미한 흔적처럼 기억으로 남아 이렇게 담담하게 글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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