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올라가는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에어컨을 빵빵 틀었더니 급성 축농증에 걸렸다.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 말로는 에어컨 바람이 코 점막을 건조하게 해서 더 잘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지난주 금요일 오전에 병원에 찾아가 진단을 받고 거의 일주일이 다 되었다. 항생제를 먹고 있지만 축농증이 쉽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어려서부터 코가 약해서 코감기도 자주 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비염에도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코를 풀면서 몽롱한 의식을 가진 채 휴가인 남편의 삼시세끼를 챙기고, 방학을 맞이한 꼬맹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서 놀아줘야 하니 고역이다.
제발 나 혼자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게끔 내버려 둬!
이렇게 절규하고 싶다. 불가능한 꿈인 줄 알면서도 쉽사리 포기가 안 된다.
어려서부터 운동에는 소질이 없었다. 가장 자신 있는 건 숨쉬기 운동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체력장을 하면 매번 낮은 등급이 나왔다. 윗몸일으키기도 안돼, 장거리 달리기는 마지막에 들어오기 일쑤, 팔힘이 없어서 공을 던져도 멀리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20대가 되어서도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살을 빼고 싶을 땐 열심히 굶었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서실에 꾸준히 앉아서 공부하려면 엉덩이 힘으로 버텨야 한다고, 그러려면 체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합격수기에서 합격자들이 누누이 말했지만, 결코 따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면 리듬도 불규칙했다. 새벽까지 공부하고 대신에 늦게 일어나며 엉망진창으로 몸을 망가뜨리며 살았더니, 환절기가 되면 무조건 감기에 걸렸다. 코에서 시작해서 목으로 넘어가든지, 아니면 목에서 시작해서 코로 넘어가며 몇날 며칠을 시달렸다. 또한 한여름에는 냉방병으로 감기에 걸리고, 한겨울에는 날씨가 추우니 감기에 걸렸다. 이렇게 계절별로 걸리다 보니 나중에는 한번 감기에 걸리면 며칠이 아니라 2주 넘게 앓아누웠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타 와서 밥 먹고 약 먹고 약에 취해 자고, 일어나서 다시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이러한 행동을 반복했다. 이 짓을 2주 넘게 하고 있으니 처음에는 엄청 걱정하시던 부모님도 나중에는 두손 두발 들어버리셨다. 딸내미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냅둬요.” 이러면서 잠만 자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니, 그렇게라도 감기를 이겨내나 보다 하며 기다려주신 것이다.
물론 아픈 뒤에는 홍삼도 먹고 보양식도 먹고 그랬지만 운동을 안 하니 아무리 먹거리가 좋아도 바이러스가 찾아오면 속수무책이었다. 우습게도 그땐 운동 부족이라 아프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체력이 약해져도 다음에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내 머릿속에서는 ‘운동할 시간이 없어. 공부하기도 바빠.’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무시했던 그것은, 체력을 다지지 않으면 그 어떤 공부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에 나는 체력을 다지기 위해 운동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데도, 왠지 공부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시간에 쫓기듯이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여겼었다.
결과적으로 몸은 만신창이에 면역력 제로이고 체력은 바닥이라 결국 원하는 청운의 꿈을 잡을 수가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하는 몇 년간 코감기와 목감기라는 병마에 시달리며 늘 패배했던 것이다.
이제는 마흔을 앞두고 조금씩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30분~1시간 정도 걷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동네 산책 코스를 돌면서 땀을 쭉 빼고 나면 좀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제2의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계획을 세우느라 늦게 자고, 계획대로 실천해야 하니 새벽같이 일어났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건 좋은 일이다. 예전의 취업 준비는 진즉 포기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 채 살아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열정이 넘쳐흐르면서 다시 시간에 쫓기게 되었다. 밥도 대충 먹게 되고 오래 하지도 않았던 산책도 안 하게 되었다. 수면 부족의 사이클로 나를 몰아세우기까지 하니 결국엔 다시 몸이 축나버렸다.
오래전 앓아누웠던 그때가 자꾸만 떠오른다. 약 먹고 자고 이렇게 하루 종일 지낼 수 있으면 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든다. 그러나 현재 나는 꼬맹이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다. 내가 처한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꿈을 자꾸만 원하고 있다.
실상 내 몸을 망친 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몸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나 자신이다. 해야 할 건 많(다고 욕심을 내)고, 그런데 시간은 없(다고 여기)고, 어느새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무너뜨렸다. 그래서 면역력을 뚝뚝 떨어뜨려 바이러스가 내 몸에 쉽게 들어와 진득이 붙어있게 만든 것이다.
지난날을 타산지석 삼아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다시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또다시 패배하게 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니, 오래전 드라마 대사와 나의 상황이 같을 수 없다. 나의 아픔은 누군가의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폐를 끼치는 것이므로.
“나만 아프다!” 왠지 억울하고 남 탓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깨달았으니, 잠만 자고 싶다고 그만 투덜거려야겠다. 홍삼이라도 한 포 빨아먹으면서 내 생활 습관을 다시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