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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해슬 Sep 03. 2021

제사를 지냈다 (1)

음식 장만하는 여자들과 남의편

얼마 전에 시댁 제사였다. 남편이 장손이라 우리 집에서 한다. 물론 코로나 시국이므로 한 2년 정도 친척들은 아무도 오지 않은 채 제사를 모시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장손이라고 하자, 친정 엄마가 무척 걱정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때 나는 오히려 그동안 안 해봤으니 이제 시댁 제사를 모신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싶었다. 시어머님은 워낙 요리를 잘하시고, 시누이도 있으니 옆에서 잘 거들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 맞는 제삿날이었다. 시댁에 가서 음식 장만을 하는데, 시어머님 손이 참 크셨다. 판을 벌린 음식 가짓수가 후덜덜.. 다행히 초짜 며느리에게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다. 시어머님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들을 키우며 맏며느리로 살아왔기에 음식 장만은 누구를 맡기는 게 더 성가셨던 것 같다. 내가 본인만큼 못하리라는 걸 이미 아셨을 것이다.


나와 시누이는   가지, 전을 부쳤는데 결혼 전까지 살면서  부친   손에 꼽힌다. 친정 엄마는 ‘여자가 결혼하면 무조건 음식은 만들어야 하니까 그동안은 엄마한테 편하게 얻어먹으라 하셨다. 그렇게 주방일을 못하게 해서  손은 여전히 똥손이다.    


그날 남편은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남의편이 되었다.






1년에 시댁 제사가 3번 있는데, 임신하고 난 뒤에 처음으로 제삿날이 평일에 걸린 때가 있었다. 그동안 늘 주말이어서 남편과 시댁에 같이 갔었는데, 일하는 남편이 휴가를 내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나 혼자 택시를 타고 시댁에 찾아갔다. 어차피 같은 도시에 살아서 차 타고 15분 거리밖에 안된다.


남편은 먼저 가지 말고 저녁에나 함께 가자고 했는데, 시어머님이 얼마나 많은 양의 음식을 혼자 준비하시는지 알기에 혼자라도 찾아뵙겠다고 했다. 시누이 역시 일하고 있어서 쉴 수 없었고, 그걸 알고 시댁에 먼저 찾아갔다. 그리고 전 부치기가 내 담당이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서 전을 맡은 날이었다. 장장 3시간이 걸렸다. 후아.. 둘이 하다가 혼자 하려니 더 속도가 안 났다. 그 긴 시간 동안 전을 부치고 나서 “다 했어요.”를 외쳤을 때, 시어머님은 나머지 음식 장만을 다 끝내셨다.






아이를 낳고 제사 음식을 장만하러 갔을 때는 모두가 다 혼쭐이 났었다. 돌 지난 아이는 기어 다니면서 할머니 집에 있는 온갖 것이 신기해 다 건들고 다녔고, 손대는 것마다 다 떨어뜨리고 망가뜨렸다.



어머니들은 특유의 화장대 구성이 있다. 본인이 쓰는 스킨 로션부터 각종 샘플들과 잡다한 것들과 오래된 연고들까지, 별게 다 놓여서 더 이상 위에 올려둘 곳이 없는 그러한 화장대를 갖고 사신다. 친정 엄마도 내 친구들 엄마도 다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게 화장대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러니 아기 눈에는 얼마나 신기했을까.



아기는 나와 시누이, 시어머님이 거실과 주방에서 음식 장만을 하는 동안 시댁의 안방 화장대를 초토화시킨 뒤에 거실로 기언코 나왔다. 아니, 남편이 문을 열고 아기를 내 보냈다.


“위험하게 왜 애를 여기로 내 보내는 거야?”

“아이가 엄마 찾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이를 내 등에 붙여두고 남편은 방에 들어가 누우며 또다시 남의편이 되었다.




거실과 주방에 한가득 놓인 커다란 조리 기구들을 탐내는 아이를 보면 시어머님은 질겁을 하셨다. 아이가 뜨거운  조리 기구에 데어서 다칠까봐였다. 얼른 나보고 데리고 들어가라고 했고, 어쩔 수 없이 전을 부치다 말고 방으로 들어갔다.


“님아, 나 대신 나가서 아가씨랑 같이 전이라도 부쳐. 애를 못 보면 일이라도 해라 쫌.”

“내가 왜? 동생이 어련히 알아서 잘할 걸.”


남의편은 이렇게 나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애를 안고 재워야 하는 내 옆에서, 본인 홈그라운드라고 발 뻗고 누워서 티브이만 봤다.




제사는 계속 지내야 하는데 아장아장 걷는 손주가 다칠까 봐 걱정이 되신 시어머님은, 제사 음식을 다 장만한 뒤 우리 집에 가지고 와서 제사를 지내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 뒤로 장소가 우리 집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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