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야?''
가야금을 전공하다 보면, 가끔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물론 매 순간순간이 기억에 남을 만큼 의미 있지만,
수많은 추억들 중에서도 미소 짓게 하는 순간은 바로 '초등학교 5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그 아이는 키가 너무나도 작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자면, 반에서 키 순서대로 줄을 서면 거의 2,3번째는 내 자리였다)
고령 가야금 경연대회였고, 그야말로 가야금 전공생의 인생 중에 첫 대회였다.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선 것도 처음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도 처음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때 그 시절의 떨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고,
벌렁벌렁 콩닥콩닥
난 분명 가야금 대회에 나왔는 데 사물놀이 대회에 나온 것 같았다.
예쁜 옷을 그렇게 좋아했던 나도 대회 앞에서는
그렇게 색이 고왔던 한복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경연을 시작하였고
원래 연습 때 내던 소리의 절반도 못 내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너무 긴장을 하여서 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게 속상했던 것인지,
상황 그 자체가 너무 무서웠던 것인지
복합적인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나는 몹시 속상했나 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대회장이 2층이었고, 경연장에서 나오면 앞에
컴퓨터 모니터로 점수판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경연장 밖을 나갔고
점수판을 보면서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꼴찌에서 두번째였다ㅎㅎㅎ..)
나름대로 처음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를 해본 것이라서
화장이 지워질까 봐 그렇게 신경 쓰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대회장이 떠나갈 세라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 까
거의 30-40분은 운 것 같다.
그렇게
초등부 경연장 점수판 앞에는 파란 치마에 진분홍색 저고리를 입은 판다 한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눈물이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우리 엄마께서는 아직도 나를 놀리신다.
''그렇게까지 우는 아이가 어디 있냐고.''
아직도 기억나는 게 첫 대회이기 때문에
근처에 사시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오셨었다.
울고 있는 나를 달래기 위해서 맛있는 김밥을 사 오셨고
눈물을 흘리느라 배가 고팠는지
울음을 그치고 김밥에 마음이 빼앗겨 버렸다
시간이 흘러 12살의 순수했던 그 아이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는 어엿한 연주자가 되었다.
이렇게 따뜻하게 내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건
몇 시간이 지나도록 울었던 판다로 머무른 것이 아닌
눈물은 가볍게 털어내고 꿋꿋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서가 아닐까?
아이야, 고마워
그 시절의 판다로 머물지 않아 줘서
그러니
앞으로 나에게 어떤 힘든 시련이 찾아와도
순수하게 김밥 먹고 떨쳐냈던 나처럼
시원하게 털어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