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김희원
마음의 겉면이 파스를 붙인 듯 쓰라린다.
움직일 때마다 난 차가운 공기와 입씨름한다.
달콤한 꿈을 꾸었고,
그 꿈엔 그리움이 혼재되어 그저 실루엣으로만 남아있다.
컵에 담아두려고 하였는 데
자꾸만 삐져나온다
스케치 속 너울거리는 그의 잔상은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답다.
이젠 과거가 되어버린 요란했던 심장박동수
그 숫자는
내 곁에서 일망의 희망을 품은 채 겉돌고 있다.
-책 '푸른 날개를 닮아서'에 수록된 시=
옛날엔 난 내 슬픔에 꽤나 용감했다.
사랑이 가고 느낄, 쓰라린 감정을 포개고 포개서 시로 쓸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파스 붙인 듯 아려오는 건
그날따라 공기가 탁해서였다고 믿고 싶지만, 늘 익숙하게 마셨던 설렘이 이별하는 순간이라 그럴 것이다.
정겨움이 차가움으로 바뀌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도 시간이 걸리듯
우리는 생각보다 마지막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쩌면 마지막 페이지만 덜렁거리는 예정된 이별일 수도 있지만,
그게 하필 그날이라는 게 참 원망스러울 뿐이다.
나의 경우 그날만 되면 '이별'이란 단어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잊어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잊어질 줄 알았거늘
움직일 때마다 이쪽저쪽이 아리고 그립고, 답답하고 쓰라린다.
그야말로 시끌벅적하다.
생각해 보면, 이 시간이 힘든 이유도 그와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에서도 힘들지만.
그렇게 사랑에 예뻤던 나를 다시 볼 수 없을까 봐 힘든 것도 있다.
물론 돌아서 생각해 보면 귀여운 걱정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난 보통 이별을 하면 거사(?)를 치른다.
다름 아닌 ''이별 청소''
물론 사람마다 극복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다르다.
인스타그램 속 사진 지우기?
편지 찢기.? 버리기..? 등등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지만, 꼭 하는 게 있다.
설레고 요란하게 쿵쿵거렸을 심장박동수를 챙겨 오는 것.
왜냐하면 어디선가 아직도 뛰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희망을 품기 전에 얼른 데리고 와서 다독여줘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잠잠해질 심장박동수에게 말해줘야 한다.
'조금 잠잠해져도 당황하지 마. 곧 다시 뛸 일이 올 거니까'
사람마다 이 시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을 탓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와의 시간은 멀어지고, 의미가 사라졌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다른 누군가와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우리 모두가 그렇게 기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