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ori Dec 03. 2017

손이 많이 가는 사람, 손이 빠른 사람

손이 안 가고 손이 빠른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할까?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미국에서 출장 온 사람들과 미팅, 사업계획 준비, 중국 전시회 이후에 거래 제안 회의가 약속된 업체, 25시간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에서 온 업체와 계약을 마무리까지 정신없이 일주일이 지나가던 때였다. 함께 일을 했으면 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묻고 만나며,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지나간 한 해였다. 여름휴가도 못쓰고,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빚처럼 쌓인다. 해외영업이란 일이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과 단절이 발생할 때가 많다. 한 해가 지나가는 지점이 되면 후회보다 마음이 빚이 켜켜이 쌓여간다. 


 졸다와 자다를 셔틀 하며 보내는 주말은 무료할 틈도 없다. 학원에 갔다가 다녀온 막내가 게임하는 모습을 좀 보다가, 츠바키 문구점을 읽었다. 피곤할 때는 쉬는 것이 제일 좋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알게 된다. 무엇이 잘 되어 간다는 것이 좋은 일이다. 즐거울 때는 무엇을 준비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돌아보지 못한 것들을 잘 되어야 하는 일과 교환하여 미래의 후회를 쌓고 있는지 모른다.


 마침 러시아 조추점 장소에서 사촌 형이 보내준 사진을 도착했다. 예선 통과는 어려워 보인다는 답장을 했다. 볼썽사납게 조합을 계산하며, 정신승리법을 강조하는 만행은 사라졌으면 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실력은 가장 중요하고, 실력에 노력을 더하는 과정에 운도 따라오는 법이다. 멕시코 친구가 이번에도 베팅을 하자고 한다. 오래전 월드컵 국대 유니폼 내기를 하고 이겨서 멕시코 유니폼을 하나 받았었다. 10년이 지났는데 월드컵만 하면 잊지 않는다. 함께 사업이나 잘해보자고 답장을 해줬다. 현실을 보이는데 보고,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유니폼 하나 사줘야겠다는 생각과 늦은 밤의 메시지가 기분 좋은 시간이다.



 일상을 돌아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팀장, 파트장들이 손이 많이 간다고 놀려대기 때문일까? 삶의 빚도 많이 쌓이는데, 앞으로 손이 가는 민폐까지 늘어나면 참 곤란할 것 같다. 사람은 늙어 본 적이 없다. 얼마나 손이 많이 갈지 상상하기 힘들다. 단지 불필요한 피해를 주는 것은 남의 소중한 삶과 시간을 낭비시키는 행위란 생각이 내게 머물러 있을 뿐이다.


 무한한 시간처럼 보이고, 지겨운 하루의 긴 시간과 달리 삶의 시간은 참 빠르다. 나이가 들며 깜빡증이 생기고, 이야기하던 와중에도 깜빡증이 반복된다. 조금씩 손이 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사람의 생체적 주기를 볼 때 기분 나쁘지만 당연하다.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단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큰 아쉬움은 없다. 나이 듦에 대한 준비로 메모와 기록과 같은 좋은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건을 항상 정해진 위치에 놓는 습관도 공들인다. 이 습관은 먼지와의 전쟁이다. 하지만 미래에 손이 많이 가는 아저씨, 할아버지로 남아, 좋지도 않은 성깔 머리까지 고려하면 세상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앞선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성격, 습과, 태도, 가꿔온 성품과 타고난 성품, 지식과 지혜 등 다양한다. 부족한 부분에 관한 포괄적 의미다. 모든 것을 다 갖은 사람은 없다. 성품은 괴팍해도, 지식과 지혜로 남에게 기여하고 도움을 줄 수 있고, 능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플랫폼 같은 인간적 매력을 갖은 사람들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뭐라도 기여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지, 필요하다고만 말하는 사람이 되면 곤란하다. 나이가 들어도 동정과 수혜를 받아야만 한다면 슬플 것 같다. 


 세상을 독립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 노력이 독야청청 혼자만 고립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손을 덜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협력을 통해서 자신의 네트워크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오늘도 오랜 시간을 보내는 밥벌이 터전에서도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는다. 프로세스 자체가 이런 구조다. 이 생각과 원칙을 잘 가꿔가기 위해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잘 알고 수행해야 한다.


 세상에 나와 도전하는 과정에 10개 중 3개를 달성하면 잘하는 것이다. 하던 일의 목표대비 70~80% 수준으로 지속적인 성과와 결과를 낸다면 평균 이상이다. 주가 그래프처럼 인생은 길게 보면 성장을 지향하고 일시적인 업다운에서 자유롭지 않다.


 목표는 항상 금년보다 올라가기 마련이다. 세상은 항상 100%, 초과 달성이라는 성장 중심의 관점이 지배적이다. 똑같은 결과와 수익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다면 성장은 굳이 도모할 필요가 적어지겠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성장 목표로 상쇄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해해야 하는 영역이다. 만약 계속 초과 달성한다면 회사를 왜 다니나? 창업을 해야지.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에 책임을 갖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면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 기반을 높여야 한다. 목표에 미달하면 새로운 대책과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과 준비를 해야 한다. 책임의식이 없다면 권리가 주어져서는 안 되고, 권리와 책임의식 모두 부족하다면 그 사람의 지위를 교체해야 한다. 개인 간의 관계는 손이 많이 가도 보듬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 계약적 관계라는 밥벌이 장소는 너무 기대면 함께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의 필요와 공헌을 약속하고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 되면 사람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공과 사를 말하는 것도 분별과 구분을 통한 합리적인 방향을 찾기 위한 조율 작업이다. 자신의 학습과 준비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을 조금씩 벗어나면 전문성을 갖게 된다.


 손이 많이 가는 사람에서 벗어나면 손이 빠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손이 빠르다는 것이 일을 빨리빨리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손을 움직여 성과를 내는 분야, 자판을 두들겨 성과를 내는 분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빨리빨리는 중요한 일 같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제대로 하는 것이다. 속도는 방향을 이기지 못한다. 결승선 반대로 제일 먼저 뛰어가면 일등이 아니라 꼴찌다.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인생엔 리바이벌이 없다.


 소비에트 시절 협동농장에서 A는 9시에 고랑을 만들고, B는 10시에 씨를 뿌리기로 했다. 9시에 와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 열 시에 오자 10시에 씨를 뿌리기로 한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하고 가버렸다. 그 체제의 비효율을 논하는 예지만 제대로 하지 않는 과정은 비효율을 만든다. 옛날 소비에트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과거 삼성의 임원분이 남이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을 바로 잡는 것이 회사일의 대부분이라고 말씀하셨다. 되돌아보니 그 비중이 말씀처럼 80%는 아닌 것 같지만 비중이 낮지는 않다.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은 기업과 업무의 차이와 상관없다. 처음엔 모두들 그렇다. 우리는 손이 빨라져야 할까? 아니면 정확해져야 할까? 내겐 손이 빠르다는 말은 손이 정확하고 정교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손이 빠르다는 이야기는 머릿속으로 상황의 인식, 판단, 목표, 목표를 향한 올바른 방법, 그 결과가 갖고 올 영향에 대해서 정확한 예측과 판단이 가능하다는 말과 유사하다. 전략적 사고가 잘 훈련되었다는 말이다. 손은 절대로 두뇌의 움직임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손이 느리다는 것은 상황 분석, 판단력, 의사결정력의 문제다. 지식, 경험과 같은 필요한 정보 총량과 비례한다. 공부하라는 말이 인간에게 항상 유효한 이유다.


 실무자에서 관리자가 되면 밥벌이가 더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계량적으로 말하면 관리자, 리더가 된다는 것은 업무 처리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 데이터의 총량이 증가했다는 말이다. 젊은 친구들은 이를 축적해하고, 경력이 올라갈수록 축적의 양을 증가시키며 인사이트를 고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일정 수준이 되어 실무가 몸에 착착 붙는 베테랑이 되면 자신감도 생긴다. 눈감고 업무 프로세스와 현상에 대한 실무 대책이 나온다. 실무를 벗어나 관리자가 되어 업무역량이 크게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발생 원인은 자기 주도 학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생각할 수 있다. 찍는 것도 실력이란 말이 거슬리지만 지식 총량이 찍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무 후배를 리딩하는 위치에 가면 다르다.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리더가 되기 전 리더를 보며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이 유효했는지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선임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미리 그 위치의 일을 머릿속으로 사전 연습을 해야 한다. 지위란 그 지위에서 필요한 사고력, 안목, 지식, 휴먼 네트워크가 준비된 사람에게 다가오는 일이다. 직책을 받고 그때부터 하겠다는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을 다시 해 볼 필요가 있다. 


 타율이 낮아도 타점과 득점이 높은 선수가 있고, 타율은 높은데 타점과 득점이 낮은 선수가 있다. 팀의 상황과 상대팀 투수에 따라서 안타를 노리고 휘두르는 것보다 희생번트나 외야 희생타를 노리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 때는 방향과 타구가 중요할 때가 있다. 개인 타율 관리보다 팀의 승리가 훨씬 중요하다. 홈런을 치면 가장 좋지만 항상 홈런을 칠 수 없다. 매번 풀스윙을 휘두르다가는 다시 마이너리그로 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다른가? 밥벌이 터전의 규칙에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 되는 길이 매번 홈런을 치겠다고 휘두르는 타자와 다르지 않다. 승진을 하고, 연봉이 오르면 기분이 좋다. 반대로 지위가 내려가고 급여가 줄면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모두들 잘 안다. 순간순간 인내하며 해야 할 것을 해야 지킬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을 인내라고 하다. 인내라는 것도 정확한 목표, 이유가 필요하다. 이것을 잘 알지 못하던 때 실수가 잦았고, 지금은 조금은 줄어들었길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책과 영화라는 인류문명의 혜택을 보았고 가성비도 좋다고 생각한다. 체험해야 알 수 있는 일보다, 간접적 사례를 통해 배우는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된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책을 읽는 이유가 학문적 이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세상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종사하는 밥벌이 분야의 지식, 이해, 안목이 넓어진다면 삶에 도움이 된다. 빅데이터를 모으는 마구잡이 방식도 있겠지만, 목표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모아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기계는 무작정 모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지만 인간의 기억과 연산 용량은 제한된다. AI와 인간의 공통 요소를 돌아볼 때가 있다. 본질적 방법은 같다. 차이점이라면 기계는 연산능력과 속도를 갖고 빠르게 현상과 패턴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사람은 폭넓게 융합하고 확장해서 혁신과 창의력을 도출한다. 미래가 불안하다는 고민보다 손도 빠르고 필요한 사람이 될 고민을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인간이 지식 확장을 통해서 지혜의 과정으로 가는 것은, 공자의 일이관지와 같다. 동일한 체계를 기계에 도입하는 일이 AI의 목적에 부합한다. 인간이 만든 모든 문명은 인간의 사고 틀을 넘기 어렵다. 인간이 책을 읽고 정보를 습득하는 다양한 과정이 나만의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다. 나만의 인사이트, 즉 통찰력과 안목이 생긴다.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서 서로의 통찰력과 안목을 교류한다. 그중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방식이 책이며 손이 빨라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다만 기계의 결과는 시각화(Visualization)라는 데이터 표출 기법을 통해서 전해지고, 사람은 실행이란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고, 실행을 이끌어내기 위한 협력구조를 위해서 말이란 언어를 사용한다. 밥벌이 현장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수단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생각하는 것은 갈수록 처리속도가 떨어진다. 지속적으로 손이 빨라지는 것을 유지하는 방법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북 치고 장구치고 했다면, 이제는 북치는 사람과 장구 치는 사람에게 기여하는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주는 역할로 변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홀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손이 느린 사람이 될 가능성만 커진다.


 일상에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란 초보자나 훈련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손이 빠르고 정확해지도 돕는 것은 그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세상을 앞서 살면 그들보다 회사를 덜 오래 다닐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07화 회의를 해야 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