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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Sep 05. 2020

일단 가르쳐 줘!

배우겠다는 의지는 강력한 힘이다

 회사란 조직에는 전문 지식을 갖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박사(博士)만 전문가가 아니다. 한자로 두루 넓게 아는 선비가 박사인데, 현실 사회에서는 한 분야만 잘 아는 사람이 박사다. 나는 모든 자격증은 정기적으로 자격검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전문가가 지금도 전문가일지 장담할 수 있을가? 세상 모든 자격증이 CCR검증을 한다면 세상은 훨씬 겸손해질 것이다. 밥벌이를 침해하는 천인공로할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에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은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꼭 가설, 검증, 통계분석을 통한 논문을 쓰지 않더라도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엄청난 능력을 갖은 사람이 있다. '척 보면 압니다'처럼 정확한 결과를 척척 알 수 있는 경험 축적이라면 대단한 것 아닌가?


 분업구조로 만들어진 조직은 다른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장점이 있다. 배경지식과 경험이 다르다는 말이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관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그런 생각을 잘 안 할 뿐이다. 조직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


 "갈쳐줘!(공손하게 때론 아양 떨며)"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과 '창피하게 뭘 자꾸 모른다고 말할 수 없지'라는 사람의 결과는 다르다. 그 결과가 삶에 큰 영향을 준다. 모르는 내용을 배울 때마다 온갖 회사 사람들을 쫒았다니며 '이거 무슨 소리예요? 어려운 말로 하지 말고 초딩도 알아듣는 수준으로 설명해줘요'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업종 잡학 전문가가 됐다. 아는 것도 병이란 생각이 들지만 우리 업종의 온갖 분야에 대한 지식을 안다는 것은 유리하다. 


 기획실 후배가 찾아왔다. 기획실 막내 동기부여도 필요하고 마침 "GDPR", "NDAA" 이런 것을 알고 싶다는데 한 두 시간 설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실 기획실에서 비관세 교역 장벽을 조사해서 사업부에 전달해야 하는데 기획실 교육을 나한테 맡기고 간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NDAA관련 사항들이 사업적 규제, 새로운 고역장벽이 되어가는 중이다. 


 개인정보보호법, 국가수권법이란 법률 규정을 대략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설명하는 수준은 다르다. 쉽게 설명하려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내용들이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 회사가 만드는 제품, 서비스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제도 변화와 요구사항이 현재 세상의 트렌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를 설명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이걸 묶어서 동기부여까지 해주라니 말은 참 쉽다는 생각이 했었다.


 세상에서 제일 거부하기 곤란한 일이 막무가내로 "가르쳐줘"다. 대단한 권력이다. 누구나 이렇게 나오면 뿌리치기 힘들다. 왜냐하면 인간이 측은지심도 있고, 기특해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뿌리치면 "아니 사람이 왜 그래", "애한테 너무하네"라는 체면과 평판에도 큰 영향이 생긴다. 무엇보다 이런 일이 잘 되면 모두가 즐거워진다. 잘 안 가르쳐주는 것은 더 집요하게 배워야 한다. 대개 그 것이 중요하다. 기획실 신참들에게 포럼 링크를 미리 보내줬다. 전문가 집단의 자료와 글이 있어서 나중에 찾아볼 때 도움이 될 듯하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한참 떠들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을 안 보고 사는 편이라 잠시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봤다. '무술 고수 vs 격투기'라는 영상에 호기심이 생겼다. 격투기 선수의 완판승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실전의 힘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분야가 군사력이다. 한국이 베트남전에서 기세 등등한 것은 한국전쟁이란 실전 경험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종종 전쟁을 하는 것도 실전 경험을 갖는 사람들을 확보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조직 생활은 실전이다. 실전을 민간인, 민방위, 예비군, 군인, 직업군인 중 어떤 수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직업은 프로페셔널 아닌가? 한참 떠들다 교육 대상자 중 수학 전공자 앞에서 "집합은 참 철학적이다"라는 말을 했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좀 잡아본 셈이다. 모르면 나도 물어보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고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무술은 오랜 전통을 갖은 온실 속 훈련이라고 한다면, 격투기는 실전에 가까운 환경에서 다양한 기술을 연마한다. 무술 고수의 노익장은 가상하지만 떡락이 되는데 몇 초 걸리지 않는다. 무모하다. 이런 자존심은 상황과 때를 잘 분별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나때'가 상황, 때, 장소, 지위에 맞으면 명불허전이 되고, '나때"만 남으면 꼰대가 된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알려주다보면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우게 된다.


 결국 막둥이가 알아듣는 수준에서 4차 산업 ICBM, AI의 ABCD, 이런 변화 속에서 필요한 산업 규제와 기술의 추진방향, 그 영향이 우리가 하는 산업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직접적인 미국 시장과 유럽시장에서 규제와 조치에 대해서 장황하고 대강 철저하게 설명해줬다. 그래야 왜 개인정보보호와 국가수권법이 왜 발생하고 이것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대략적인 맥락을 갖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재미를 주려는 노력과 모르는 말이 나오면 서로 찾아가면 교육을 했다. 열심히 뭘 적는 모습이 기특하다. 지식과 삶의 깊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립서비스인지 진심인지 재미있었다니 다행이다. 공부는 자신이 해서 채우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答)을 손쉽게 얻고 싶어 한다. 내 경험에서 여성들은 잔소리할 때 빼고 답을 말해라는 효과적인 요구를 많이 한다. 정작 본인들은 안 그런것 같은데. 구글, 다음, 네이버 포털이 인기 있는 이유는 답이 쉽게 나오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더 진득하고 깊이 있게 파고든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절실함 또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더 쉽게 다가갈 뿐이다. 답을 쉽게 구해 상황만 보면하려고 하면 내게 남지 않는다. 좀 지나면 기억이 안 난다. 포털에서 찾아보는 정보는 1년만 지나면 머릿속에서 남아있는 것이 없다. 휘발성 지식은 상황에 따라 필요하지만 사람을 경박하게 만든다. 수영장 물이 빠지면 누가 벌고벗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밧데리 나가면 누가 정말 대단하지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와지고 싶다.


 다음에 뭘 또 물어보겠단다. 주제는 내가 알리가 없다. 그러면 횡설수설 아무 말 대잔치나 A~Z까지 어떤 주제를 골라도 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나때' 될지 모르겠다. 부탁받고 한 일이지만 사업부 막둥이가 "왜 재네들만 가르쳐주는 거예요"라고 혼을 낸다. 어이 없지만 밥을 사주는 것으로 무마했다.


 오후에는 밑바닥부터 일해서 자수성가로 일어나 해외기업(우린 조폭 사장이라고 부렀다)에서 뜬금없이 COVID-19, 미국 무역전쟁, 4차 산업 기술동향에 따른 PEST분석 자료를 달라는 내용이 접수됐다. 담당자, 해당 팀장에게 "애들이 외부환경 분석, 내부 환경 분석, 역량 분석, 5 Force경쟁 분석, 경쟁전략 수립"과 같은 일을 하는 애들이 아닐 텐데 갑자기 왜 이러냐?"라고 물어봤다. 담당자 왈 "창업자가 깡패인데 그럴리는 없고... 코로나로 직원들 놀지말라고 갈구는 건가?". 일부 자료가 있지만 보내도 나중에 요란할 것 같다. 전략은 본인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 전략을 알려주면 자명고를 찢는 일과 같은 일이고.


 "고객님, 문의하신 내용을 우리가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으나.... 분석을 해달라는 것이면 시장조사 기관과 전문 컨설팅 기업에 의뢰를 하셔야 하고, 분석을 하기 위해서 정보가 필요하면 질문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엔간이 좀 해야지!!라는 마음을 담아)"


 한국 지사에 있는 사람에게 본사 담당자가 계속 연락이 오나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벌써 눈앞이 정상이다. PEST 각 부분별로 모아 두었던 자료를 조금 주고, 그 나라에도 우리나라 한국은행처럼 중앙은행에 가면 각종 지표 나오고, OECD/UN/블룸버그/주식시장 산업별 애널리스트 리포트와 각 산업협회에 가면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정치문제는 본인이 뉴스를 보던 곳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찾아봐야 할 일이다. 해석은 제각각이다. 가장 중요한 일이 메시지를 한국 지사에 보냈다. "본사 경쟁전략 나오면 우리랑 관련 부분 미리 알려주기 있기 없기? 알았지!!"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아~ 쾌청한 하늘과 솜사탕 같은 구름이 좋다. 파란 하늘이 깊고 청명한 가을이다. 주말이 느릿느릿 다가오는 금요일에 하루 종일 빚쟁이들만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런데 대표이사는 왜 이런 날 나를 찾으시나. 갈켜달라고 할게 없는데.. 어쩌나 (뭘 또 시키실려고 이런 느낌적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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