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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Nov 02.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우리말에는 곱고 어여쁜 단어들이 많음에도 묘하게 번역투 같은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뜻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수십 가지라도 댈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사랑'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과 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이 주는 낭만이 있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이러한 낭만을 기대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며 다소 유아적일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역시 차가운 인과를 담고 있는 접속사 '그래서' 보다는 뜨거운 숙명을 담고 있는 듯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관계 혹은 일 등 내 인생의 어떤 영역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칠만한 일은 별로 없다. 그나마 여름과 운동 정도. 싫은 건 싫은 거고, 좋은 건 좋은 게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고양이는 다르다. 귀엽고 예쁘고 착하게 굴어서, 그런 이유만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까탈스러우며, 제멋대로인데 다가 해외여행은커녕 퇴근 후 술자리도 편한 마음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그냥 나의 작은 고양이니까. 모든 이유 때문에,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우리 벼리.  


서랍을 헤집고 다니며 모든 옷에 털을 뿜어대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사랑합니..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굳이 서랍까지 열어가며 기어들어가는 건 좀 아니지 않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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