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우리말에는 곱고 어여쁜 단어들이 많음에도 묘하게 번역투 같은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뜻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수십 가지라도 댈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사랑'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과 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이 주는 낭만이 있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이러한 낭만을 기대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며 다소 유아적일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역시 차가운 인과를 담고 있는 접속사 '그래서' 보다는 뜨거운 숙명을 담고 있는 듯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관계 혹은 일 등 내 인생의 어떤 영역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칠만한 일은 별로 없다. 그나마 여름과 운동 정도. 싫은 건 싫은 거고, 좋은 건 좋은 게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고양이는 다르다. 귀엽고 예쁘고 착하게 굴어서, 그런 이유만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까탈스러우며, 제멋대로인데 다가 해외여행은커녕 퇴근 후 술자리도 편한 마음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그냥 나의 작은 고양이니까. 모든 이유 때문에,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우리 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