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無等山)은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북쪽의 나주평야와 남쪽의 남령 산지(南嶺山地)의 경계에 있다. 통일 신라 때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표기하다가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밖에도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9년도에 광주에 온 나는 무등산에 대해 잘 몰랐다. 광주 사람들이 아무리 무등산이 최고라 말해도 내게는 그냥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산, 사실 이것도 그쯤에 있을 거로 생각하는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무등산에 오른 건 10여 년 전부터이다. 아이들이 자라자 그 유명하다는 산을 오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산의 매력에 빠져 일 년에 몇 번씩 오르곤 했다.
<중봉에서 서석대로 가는 길>
최근 다시 무등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무등산 높은 곳 어딘가에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복수초’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숱하게 산을 다녔으면서도 한 번도 실물을 보지 못했다. 물론 바람꽃도 못 봤지만 유독 노란 복수초가 보고 싶었다.
약사사 가는 길 어디쯤 복수초가 있다는 말을 듣고 평소에 가던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갔다. 내가 자주 오르는 길은 증심사 입구에서 바람재를 거쳐 중머리재와 장불재를 거쳐 입석대, 정상, 서석대를 찍고 중봉으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다른 길로 간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증심사 입구, 토끼 등, 중머리재, 장불재를 거쳐 정상으로 갔다.
<복수초 꽃봉오리>
약사사 쪽은 재작년에 친구와 걸었었다. 어머니 젖샘(낡은 표현이라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적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 그냥 쓰기로 했다.)처럼 여러 개의 길이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익숙한 걸 좋아하는 성향이다 보니 그 많을 길을 두고도 가는 길로만 갔었다. 그 길은 우연히 알게 되었던 터라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쯤’이 어딘지 몰라 한참을 헤매야 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꽃봉오리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 헤맸는데, 겨우 찾았는데 또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햇빛을 받아야 활짝 핀다는 말에 기다리는 동안 새인봉을 지나 중머리재로 갔다. 정상을 갔다 몇 시간 뒤에 갔을 때 그제야 몇 년 동안 찾은 복수초를 볼 수 있었다. 지인은 그 흔한 복수초에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묻지만, 이유를 말해 줄 수 없었다. 그냥 문득 이제 나도 산꾼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조금은 무등산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활짝 핀 복수초>
나는 프랜차이즈 학원을 운영한다. 이름을 대면 다들 알만한 학원. 2년에 한 번씩 본사와 재계약을 하는데 이번에 계약을 할 때 매니저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그전에도 같은 회사에서 일했지만, 가맹점으로 정식 계약을 맺은 건 2008년도이다.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삶은 짧고, 굵게 살아야 한다’라는 강박에 빠져 있었다. 한참 젊었으니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쳐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일했다. 1년 만에 본사에서 주는 ‘우수상’을 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일을 했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본사는 과거를 보지 않고 현재를 봤다. 미래를 봤다. 과거의 일은 다 묻히고 실적이 오르지 않은 이 난관을 어떻게 할 거냐며 따지는 듯했다.
본사 입장에서만 보면 심각한 상황이지만 나로서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틴 게 스스로 대견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안 좋은 소리를 듣다 보니 울컥했다. 괜히 숫자에 10년 넘은 내 삶이 통째로 매장된 것 같아 억울했다.
‘조금 더 노력해 달라, 2년 뒤에도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다 걱정되어서 하는 소리이다.’
재계약도 했고, 매니저와의 대화도 훈훈하게 끝났지만,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숫자에 매여 동동거렸다. 세상에 모든 것은 숫자로밖에 증명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부표처럼 떠올라 일상을 견디기 힘들어졌다. 이제껏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 할 거고, 언젠가 너 스스로 그만두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나를 달랬다. 아무리 달래도 효과가 없었다.허무와 허탈감에 삐딱한 마음만 가득했다.
복수초를 찾아다녔지만,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무등(無等)의 삶이었다. 삶에 등급을 매긴다면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차별이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살다 보니 듣기 싫은 말이 ‘최고’가 돼버렸다. 최고라 하면 그 이전의 것들은 다 무시하는 느낌이다.
복수초(福壽草)의 꽃말은 ‘행복’이란다. 어렵게 찾은 복수초의 꽃말처럼 나도 이제 숫자로 등급을 매기는 곳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싶다. 어떻게 행복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2년 전 재계약을 할 때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고민 중이다. 앞으로 2년 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삶을 등급으로 나누는 기준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숫자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매월 회원 수를 계산하고 임대료와 관리비 등을 생각하면 완전히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방법도 모르겠다.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으니 복수초를 본 순간 전율과 함께 눈물이 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