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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Jul 27.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10

나만 아는 엄마 이야기


  엄마와 나는 40살 차이가 난다. 지금은 그 나이에 애를 낳는 게 흔한 일이지만 그때는 늦둥이 중의 늦둥이었다. 8남매 중 7번째. 큰오빠는 명절 때 집에 오면 동생이 하나씩 생기는 게 한이 맺힐 정도로 싫었다고 한다. 오빠의 말에 내 존재가 거부당하는 것 같아 싫다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낳기만 하고 방치해둔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이다.


  6남 2녀 중 맏딸인 큰언니는 나를 낳기 전에 시집을 갔다. 집안에 여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작은 집도 아들만 셋이었으니 남아선호 사상이 남아 있던 시절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친구는 이런 날 보고 '따순밥'이라고 불렀다. 자기는 딸 많은 집에 태어나 '찬밥'신세라고 했다.


  자식 중 엄마와 가장 가깝게,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나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내게서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사랑을 주든, 받든.


  엄마의 이야기는 어릴 적, 7살의 기억부터 난다고 한다. 엄마는 정읍 이평 출신인데 잘 사는 집이었다고 한다. 1935년생인 엄마는 7살인 1942년 때 소달구지를 타고 만주로 갔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목수여서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한테  사기를 당해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작고 여린 아이가 그 먼길을 갔다 왔을 생각을 하니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할 수 없다.


  외삼촌과 이란성 쌍둥이인 엄마. 게다가 이미 이모들이 셋이 있어서 늘 뒷전이었다고 한다. 두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없어 싸리 죽으로 연명했었다고 한다. 엄마는 남 이야기를 하듯 말했는데 나는 싸리 죽이 아니라 그 태도에 놀랐다. 체념에서 오는 수용인지 아니면 습관적인 독성 관계에서 오는 피해자의 모습인지 몰라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결혼을 했어도 평탄치 못했다. 새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구박, 시동생이었던 작은아버지의 방탕과 아빠의 방탕까지 감당할 몫이 너무 컸다. 심지어는 할아버지에게  맞아 생긴 흉터도 있었다.


  '그때는 다 그랬어. 무조건 참고 살아야 했어.'


  몇 킬로그램의 체념이 엄마를 저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오빠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호적을 바꿔 살았다. 그래서 집 앞에 있는 땅도 작은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오빠에게 말했더니 진짜 토지 대장에 버젓이 작은 아버지 이름이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는데 사촌들도 모르고 있었다. 결국 명의를 돌려놓기는 했으나 내가 아니었다면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또 사망 신고를 하다가 호적이 뒤바뀐 게 아니라 둘만 서로 바꿔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는 작은 아버지가 아버지의 호적으로 살고 아버지가 작은 아버지의 호적으로 산 이유가 군대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6.25 때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군대 문제야 그렇다 치고 몇십 년을 바꿔  이유가 궁금하다. 두 분도 호적은 그대로였다는 걸 알았는지 궁금하다.


  또, 언제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주 어렸을 적 엄마가 옷 보따리를 싼 적이 있다. 도저히 못 살겠다며 울먹이다 엄마를 붙들고 우는 나를 보며 말했었다. '내가 너 때문에 산다'. 엄마가 옷 보따리를 왜 쌌는지도 모르는다. 왜냐하면 똑같은 일 즉 아버지의 술주정이나 폭력 등은 매번 일어났는데 왜 하필 그때 보따리를 쌌을까? 나는 오래도록 그 기억을 놓을 수가 없다. 차라리 그때 모질게 우리를 버리고 갔더라면 엄마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엄마의 이야기는 많이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엄마를 위해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잘 안 다. 흩날린 꽃잎처럼 기억도 이야기도 제멋대로다.


  까막눈이었던 엄마는 자식들의 생일을 잊은 적이 없었다. 나는 엄마 생일도 잊고 엄마가 내게만 해준 이야기들도 잊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엄마가 안 계실 때를 위한 준비이다. 엄마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나 꿈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럴 날이 올진 모르겠으나 기억의 한 조각이라도 엄마를 위해 기록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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