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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Jul 23.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9

불효자는 웁니다.

  누군가의 소설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구절이 있다.


  ‘배를 타는  사람은 두 종류이다. 전자는 원래 바닷가 출신이고, 후자는 세상의 낙오자들이다.’


  정확한 문장은 아닌데 대충 이런 식의 글이었다.


  형제 중에 바닷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배를 타고 나갔다가 삼 개월 한 번씩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 그는 굳이 분류하자면 후자 쪽이다. 한때는 나는 아예 그 형제를 보려 하지 않았다. 먹칠할 가문의 위상 같은 것도 없었지만 그 형제 때문에 나와 다른 형제들은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큰오빠나 작은 오빠는 그가 사고를 칠 때면 경찰서로 어디로 뛰어다녔다. 나야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그런 일을 겪지 않았지만 ‘낙오자’로 낙인찍힌 형제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설 자리가 없었다.


  그가 배를 탄 지도 꽤 오래되었다. 작년에는 그물을 걷어 올리는 기계에 손이 끼어 몇 달을 육지의 병원에 있기도 했다. 근거리에 있었는데도 가지 않았다.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는 그가 다니는 회사 지정 병원이라서 같은 부류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해에 그가 든 보험 때문에 조카랑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의 보험을 관리했던 조카는 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내게 하소연했다. 조카에게 말 못 할 속사정을 뒤로한 채 동조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전화가 오자 대뜸 왜 조카에게 형편없는 사람 소리를 듣고 사냐며 타박했다. 그는 내게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야 조카에게 전화를 해서 화를 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동생들한테 해 준 것도 없어 미안한데, 그래서 전화도 제대로 못하는데 네가 뭔데 동생들한테 내 험담을 하느냐? 동생들이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조카의 하소연도 이해가 된다. 조카는 누구보다도 그를 위해 일했다. 조카가 모르는 형제의 강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제 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휴가철이라서 잠깐 육지에 나왔는데 엄마를 보고 싶다고 했다. 요양병원에서는 대면 면회가 금지되었으니 바깥에서라도 볼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는 알았다고 했다. 알, 았, 다.라는 말속에 약간 서운함이 들어있었다.


 요양병원으로 가기 전에 우리 집이 있다. 그를 불러 따뜻한 밥이라도 먹어야 했다. 내키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그가 우리 집에 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아직 내 안에는 그에 대한 나쁜 기억이 많다.


  배를 타는 일은 연봉제로 하나보다. 그는 육지로 나올 때마다 돈다발을 들고 나왔다. 그걸 저축하고 미래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 육지에 머무르는 동안 유흥비에 다 썼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술집 여자들에게 온정을 베풀었으며 그 여자들을 위해 사채까지 썼다가 쫓기기도 했었다. 그런 세세한 기억들이 남아 있는 동안 그를 편하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문병하고 돌아가는 길에 엄마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엄마는 몸이 불편해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물론 내가 다른 오빠나 언니에게 그가 면회할 거라는 사실을 알려 개인적으로 통화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큰오빠나 작은오빠는 바쁜지 아니면 나처럼 외면하고 싶은지 답이 없었다.


  ‘불효자는 웁니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슬프게 우는 사람은 불효자라고 한다. 그도 불효자이다. 나도 불효자이다. 우리 모두 불효자이지만 그는 확실히 불효자였다. 여기에서 방점은 ‘였’던 과거형이다. 이제 그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엄마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육지로 나올 때면 뭉칫돈을 유흥비에 쓰지 않고 그 돈을 모아 다른 형제에게 맡겨 두었다. 술꾼들을 피해 고향집으로 와서 혼자 보내기도 했다.


  엄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향집은 서금 거 린다. 생각만 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다. 다른 형제들도 그냥 둘러보기만 한다. 아무도 거기에서 잠을 자려하지 않는다. 엄마가 없는 동안 집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나도 2년이 넘게 가지 않았다. 엄마가 있을 때 고향집이 되는 것이지 엄마가 없는 집은 무덤 같다.


  형제는 일주일 정도 머물다 다시 바다로 나갈 것이다. 거친 파도와 뱃멀미와 죽음의 공포와 함께 싸울 것이다. 그는 유일하게 친구였던, 고아였던 친구가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을 본 뒤로는 바다가 무섭다고 했다.


  그 무서운 바다에 다시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린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책임질 수도 없다. 다만 그의 건강을 기원할 뿐이다.


  8월이 되면 학원 종사자 우선 접종으로 1차 백신을 맞는다. 백신을 맞는 사람은 대면 면회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게 벌써 한 달 전인데 코로나가 다시 4차 유행이 되어 모든 게 멈추게 되었다.


   나는 형제를 불효자라고 생각한 것에 미안하다,


   자식들 모두가 불효자이다.


  불효자든 아니든 마음 놓고 요양병원에 있는 엄마를 면회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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