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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Jun 24.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8

숨이 멎은 집

  마당에 들어서자 까마중과 명아주가 길을 막고 있다. 마당 옆 텃밭에는 지난봄에 심어둔 상추와 열무가 제멋대로 자라 있다. 열무는 씨가 맺혔는데 콩인 줄 알았다. 씨앗을 터트려 보고서야 열무인 걸 확인했다. 나는 풀에 시선이 묶여 집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집을 톺아보았다. 부모님이 계셨더라면 풀 대신에 작고 보드라운 상추와 부추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런 것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는 씨앗을 뿌려도 풀이 먼저 자랄 것이고, 씨앗을 뿌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 내내 엄마는 담담했다. 아버지에게 의지했던 나약한 엄마가 아니었다. 손님을 맞이하고 가족들을 챙기기도 했다.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는 파뿌리 같은 흰머리를 염색했고, 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동네도 산책했다. 그렇게 남은 생을 씩씩하게 살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를 응원했다. 엄마처럼 낡은 틀니를 해주려고 했다. 병원 예약을 하고 엄마를 모시러 가던 날 집안에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쌀쌀했는데도 온통 창문이 열려 있었다. 엄마는 고열로 끙끙 앓으면서 몸에 열이 오르자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날은 월요일, 주말에는 요양 보호사가 오지 않았으니 언제부터 앓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119를 불러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시 시골집으로 서 요양 보호사를 만났다. 그녀는 엄마가 식사도 잘하시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냉장고부터 확인했다. 냉장고 안에는 먹다 남은 김밥이랑 빵조각이 있었다. 엄마는 평소에 그런 음식을 먹지 않는다. 게다가 평생 하루에 한 끼, 많이 먹으면 두 끼만 먹었다. 남들 눈에 띄게 식사량이 늘었다면 분명 잘못된 일이었다. 자식들이 옆에 있었으면 적어도 엄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이제 막 바뀐 요양 보호사는 알 리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왜 장폐색증이었을까?)


  "우리 엄마는 이런 거 안 먹어요."


  나는 화가 나서 울먹였다. 그건 내가 내게, 형제들에게 낸 화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 뒤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하고 장성에 있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집에 왔는데 모든 게 그대로다. 그런데 온기가 없다.”


  시골집에 들렀다 온 오빠의 손에는 빈집에서 가져온 낡은 앨범이 들려있었다. 내 어린 시절이 담긴 앨범이었다. 우리는 앨범을 보면서 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었다. 이런저런 방법이 나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온기를 잃은 집을 살리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이다. 사람이 사는 것. 그러나 형제들은 다들 경기도에 사니 그곳을 떠나 시골로 내려올 사람은 없었다.


  시골집이 쓰러져 간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우리가 관리하자고 했다. 장성과 고창은 가까우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다니자고. 처음에는 집을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말마다 들락거렸다. 마당에 씨앗도 심고, 감나무와 오가피나무 가지치기도 했다. 주말에 가족 나들이를 했으나 오래 하지 못하고 멈추게 되었다. 나도 귀촌한 상태라 마당에 뽑아야 할 풀이 많았다. 주말마다 도시로 학원에 다니는 딸의 뒷바라지도 해야 했다. 남편은 자주 가지 못하게 되자 씨앗을 심은 곳만 빼고 제초제를 뿌렸다. 풀은 비웃기라도 하듯 제초제를 뿌리지 않은 곳을 피해 잘 자랐다.


  나는 처마 밑 시렁에 걸려있는 호미를 꺼냈다. 호미로 풀을 뽑으려 했다. 뿌리가 굵고 너무 많아서 뽑을 수가 없었다. 그 옆에 있는 낫을 들어봤지만 녹슨 낫은 쓸모가 없었다. 결국, 손으로 몇 개 뽑다가 지쳐서 그만두었다.


  마당을 거쳐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엄마가 계셨던 상태 그대로이다. 침대에 엄마 몸피만 빠져나간 자국이 있고 작은방에도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냉장고에는 쌀만 들어있었다. 봄에 잠깐 머물렀던 큰오빠가 남기고 간 것이다. 쌀을 냉장고에 넣고 갔다면 한동안은 오지 않을 태세이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빗자루를 들고 방을 청소했다. 이제 막 외출을 해서 비어있는 집처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풀을 뽑는 것도 방을 쓸고 닦는 것도 모두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를 멈추고 벽에 등을 기댔다. 거미줄 돌기에서 거미줄을 뽑아내듯 응어리진 내 가슴에서 집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펼쳐졌다. 기쁜 날보다는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


  우리는 엄마가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형제들은 이불을 치우지 않는다. 나도 햇살에 이불을 바짝 말려 다시 방바닥에 깔아 놓았다. 그건 당장 집이 사라지지 않을 텐데도 앨범을 챙겨 온 오빠의 마음과도 같다. 절대 마주 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에 대한 방어기제이다.


  집은 눈치가 빠르다. 빈집, 벽과 벽 사이에서 냉기가 흘러 집을 삼키고, 우리가 붙들고 있던 가족의 끈마저도 삭게 만들 것이다.


  오랜 숨결이 스민 집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늘처럼 와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 이 글을 쓴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엄마는 아직도 요양병원에 계신다. 나는 더는 시골집에 가지 않는다. 드문드문 집을 살피던 형제의 발길도 끊겼다. 코로나로 인해 집은 이제 숨통이 끊어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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