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해 Jun 24.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7

엄마의 마당에는 '꽃'이 없었다

  “이것 봐, 능소화가 꽃을 피웠어.”


  퇴근하던 길에 대문 앞에서 능소화 줄기를 손질하던 남편이 활짝 웃었다. 능소화를 꺾꽂이했는데 3년 만에 꽃을 피웠다는 거다. 나는 대문을 살폈다. 꽃이 없었다. 남편은 나보고 무심한 사람이라고 말한 뒤 대문 끝으로 가보라고 했다. 남편이 가리키는 쪽으로 갔는데 거기에 능소화 한줄기가 힘겹게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대문 뒤쪽에 있었으니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시골집으로 온 뒤에는 마당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일 처음 제비꽃이나 냉이꽃이 핀 다음에는 수선화가 피었다. 그다음에는 장미가 피었고 요즘에는 백합이 피었다. 수국도 피고 있다. 이제 능소화가 피었으니 호박꽃도 수박꽃도 피어날 것이다. 작은 마당에서 힘겹게 꽃을 피워내는 식물을 보면 저절로 삶의 희망도 줄기를 뻗는다.


  잦은 비로 인해 쉬는 날 하루를 온전히 집에서 보냈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산이나 바다로 갔을 것이다. 집에 있으면 잠만 자고 바삐 움직여서 남편은 이런 내게 ‘하숙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오늘은 집순이로 살고 싶어서 대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툇마루에 앉아 커피 한잔을 들고 눈으로 마당을 살폈다. 색색이 들어차 있는 마당이 유독 정겨웠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마당을 살폈다. 그러다 텃밭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넷이 살지만, 자식들이 독립했으니 남편과 나만 산다.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상추가 많아 보였다. 부추도 많았고 고추도 많았다. 워낙 ‘손재주꾼’인 남편은 빈 곳 없이 마당에 꽃이며 작물을 심었다.

  첫해에는 이런 것들이 잘 자라지 않았다. 주택 용지로 변경된 다음 몇 년 동안 비어있던 땅은 내버려 둔 게 싫었는지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다. 남편도 시골 출신이고 나도 출신이라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다. 우리네 부모들이 심기만 하면 잘 자라던 작물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땅에 미생물이 없어 그런 걸 알고 그다음부터는 마음을 비웠다.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매년 조금씩 작물을 심었더니 땅은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지금도 다른 곳에 비하면 토양이 좋지 않은 듯 작물들이 애달프게 피어났다.


  문득,


  정말 문득,


  뜬금없이,


  내년에는 상추나 부추 대신 그 자리에 꽃을 더 심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유 없이 문득 든 생각이다.


  엄마의 마당에는 꽃이 없었다. 상추나 부추를 심었다. 빈틈이 있으면 생계와 연결된 것들을 심어서 한 푼이라도 보탤 요령이었다. 이런 말을 했더니 주변 사람들은 상추나 부추, 고추도 예쁜 꽃을 피웠을 거라 말한다. 어쩌면 그 꽃들 때문에 엄마가 행복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엄마에게는 그보다 더 귀하고 값진 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기르는 작물의 꽃 말고, 오롯이 여유를 갖고 바라보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꽃,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버이날에 사드렸던 카네이션 화분을 기르던 엄마 모습이 생각난다. 꽃을 보고 활짝 웃던 유일한 모습이다.


  내 마당에는 상추나 부추를 심지 않겠다. 꽃을 더 심어 꽃을 바라보며 여유를 갖는 생을 살고 싶다.          

이전 06화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6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