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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Jun 06.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6

요양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요양 병원에서 오는 전화번호는 늘 다르다. 대표 번호로 올 때도 있고, 2층 간호사실 번호로 올 때도 있고, 간호사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오는 일도 있다. 전화를 받으면 먼저 소속을 밝히는데 나는 요양 병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그런 전화는 늘 불길한 예감이 따라붙는다. 너무 놀라자 안심하라며 자신이 이상한 전화를 하는 게 아님을 밝혔다.

  수간호사인 듯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려있다. 거만하지 않으면서도 위엄 있는 목소리. 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짙은 호소력을 갖춘 목소리.

  “어르신은 이번에 2차 백신을 맞을 거예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다른 어르신들은 백신 맞기 전에 영양제부터 맞으세요. 그러면 훨씬 더 이겨내기가 수월하거든요? 어떠세요? 놔 드릴까요?”

  영양제 값은 4만 원이다. 그 돈은 전혀 부담이 가지 않는 돈이다. 돈 이야기를 듣자 눈물이 났다.

  그동안 면회가 안 된다는 생각에 어쩌면 홀가분했는지도 모른다. 매주 찾아가는 일은 생을 잘라내는 일 같았다. 갔다 오면 영혼 한 숟가락씩 푹, 푹, 줄어드는데, 가지 않을 수도 없어 우울증을 앓곤 했다. 면회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쩌면 나는 속으로 환호를 했는지도 모른다. 말은 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안 보게 되니 가슴 아픈 것도 잠시였다. 금세 잊고 나는 내 생활을 즐겼었다.

  죄책감과 굳이 백신을 앞두고 영양제를 운운하는 요양 병원 측의 서운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상술이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1차 때는 아무런 이야기 안 하다가 왜 인제 와서 영양제를 맞으라고 하냐며 묻고 싶었다. 그러는 대신 난 서운한 말로 영양제를 놓아달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또다시 후폭풍이 몰려든다. 죄책감이 들자 SNS에서 읽었던 글도 떠오른다. 자기는 부모가 거동할 때까지 절대 부모를 요양 병원에 보내지 않겠다, 나는 요양 병원 사람들이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 지 다, 자식들이 나쁘다...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은 병원 관계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신뢰성이 있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잊은 게 있다. 일반 사람들은 부모가 거동할 수 있고 생활할 수 있으면 요양 병원에 모시지 않는다. 그러지 못하니까 눈물을 머금고 병원에 맡기는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혼자 집에 있었을 때, 스스로 곡기를 끊었었다. 그걸 발견하고 고창 병원에 모셨었다. 어르신들을 위한 병실이었는데 그 병실에 있는 노인은 대부분 혼자 있다가 넘어져 좌상을 입고 들어온 사람이 많았다. 자식이라도 옆에 있으면 좋으련만 다들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들여다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무리 거동을 할 수 있더라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에 가시게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글자를 몰라 자식에게 전화도 할 수 없는 엄마가 혼자 계시다가 쓰러지기라도 해서 돌아가시게 된다면 남은 생은 죄인으로 살 것이다. 내가 죄인이 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평생을 고생하면서 산 사람을 허망하게 보냈다는 죄책감에 살지 못할 것이다.

  시아버지도 돌아가실 때 그랬지만, 어느 정도는 자식 옆에서 생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 아버지도 그랬고, 엄마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변명이라고 욕해도 좋다. 욕을 먹어도 당연하다. 하지만 쉽게 욕하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영역의 슬픔이 너무 많다.

  요양 병원에서는 선의로 말했을 수 있다. 1차 때 겪어보니 건강한 노인이나 영양제를 맞은 노인들이 훨씬 더 견디기 쉽다는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다. 어른들을 보호하는 처지에서 정보를 줬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묵혀놨던 죄책감 때문에 내가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족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처럼 반응할까 봐.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죄책감과 병원에 대한 불신으로 불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봤을 때, 난 엄마 주머니에서 3만 원을 챙겨 들고 왔다.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분실 우려가 있다는 말에 가져가라고 해서 들고 온 돈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병실에서 돈 한 푼 없이 보낼 엄마 생각에 가슴이 저린다. 이러고도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 말하기 전에 미리 영양제를 맞게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며칠은 또 가슴앓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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