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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Mar 23.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4

판소리를 배우며

  '청사~~'

     

  어릴 적 공포 중의 하나가 아버지가 술을 마신 채 비틀비틀 집으로 걸어오면서 불렀던 ‘시조’이다. 청사, 라는 앞부분은 생각나는데 뒷부분은 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늘 낮음으로 시조창을 하곤 했다. 그런 날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라 나는 아버지를 피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자는 척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참다못해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아버지의 분노는 폭발했고, 결국 나는 얼굴을 몇 대 맞고, 집을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갔지만, 온통 숲이었다. 한때 산속에 산 적이 있는데 마을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이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감으로 달렸다. 다행히 익숙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에 올랐다. 소나무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빛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은은한 달빛은 매 자국을 지워주었고,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요즘 소설을 쓰기 위해 판소리를 배운다. 아직 첫 달이라 판소리를 배우기 전에 민요를 부른다. 스승님이 한 음절 하면 내가 따라 한다. 교습 시간이 끝나면 다음에 올 때까지 연습해야 하는데 바쁘다 보면 연습하는 것도 힘들다.


  화요일에 수업하러 가니 보통 월요일 저녁에 연습을 몰아서 하는데 한 번은 술자리가 있었다.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수업에 대한 강박감이 있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밤새도록 내가 민요를 불렀다고 한다. 희미한 기억 속에 녹음을 따라 했던 내가 생각났고 동시에 아버지가 떠올랐다. 제일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내가 닮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민요를 처음 배울 때는 배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 앞에서 소리를 내지르는 것도 낯설었다. 소리를 내는 것보다 가사만 외우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 배워보니 이제 조금은 쑥스러움에서 벗어났는지 소리가 난다. 물론 고수의 길에 오르는 소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초보자로서 소리는 낼 수 있게 되었다.


  스승과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제 낯설지 않다. 설레기도 하고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속도 시원하다. 민요 가락의 맛도 달다. 가끔 힘든 일을 할 때는 노동요로 부르기도 한다.


  집에 와서 문득 서재 옆에 놓인 아버지의 장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흥이 많은 사람인지라 명절에는 동네 풍물패에서 장구를 쳤다. 다른 지역으로 원정 나가기까지 할 정도로 장구를 잘 쳤다. 시조창을 할 때는 북 대신 장구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엄마가 판소리를 배웠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아버지는 안 불쌍하다. 그런데 엄마는 불쌍해 죽겠다. 솔직히 아버지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으니 한도 없겠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울먹이던 오빠의 목소리라 귀에 닿는다.


  판소리는 엄마가 배워야 했다.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평생 잘난 아버지 밑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자식을 8명인 낳아 하나하나 키우느라 눈물 바람을 했던 엄마. 엄마는 자식에게 한 번도 소리를 지른 적이 없다. 뭐든 자식이 하자는 대로 했고, 가난과 절망으로 원망 섞인 말투로 엄마의 가슴을 찔러도 그냥 침묵했다. 속으로 삭이며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을 지었다.


  1935년생인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는 엄마란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반박하고 자기의 주장을 말하기보다는 수긍하고 따라야 하는 게 미덕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보다 나약한 엄마여서 싫을 때도 있었다. 억지를 부리는 아버지 말에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죽어도 저렇게 안 살 거라며 다짐하곤 했었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건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에 나는 어른이 되면 프리랜서가 되어 당당히 돈을 벌고 싶었다. 프리랜서란 뜻도 모른 채 광고 속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며 당당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엄마는 지금도 면회를 가면 밥은 먹었는지, 애들은 잘 크고 있는지를 묻는다. 딸이 작가가 되고, 학원장이 되고, 뭔가 매을 도전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알지 못한다. 그저 엄마처럼 딸도 엄마이길 바란다. 그런 엄마 앞에서 나는 무기력해진 채 영혼을 한 숟가락 잃고 만다.


  아무리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더라도 아버지 인생 또한 한이 많을 것이다. 밖으로 꺼내야만 살 수 있는 감정들. 소리를 배우면서 밉기만 했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소리를 배우면서 엄마에 대해 안타까움은 켜켜이 쌓인다. 만약 엄마가 소리를 배웠더라면 가끔 명치끝을 두드리는 답답함은 조금 가시지 않았을까.


  꽃이 피는 봄날, 꽃마저도 제대로 볼 수 없고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을 엄마가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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