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해 Mar 17.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3

이별을 준비해도 될까요?

  봄이 내려앉자 마당에 바람꽃, 할미꽃, 산부추 꽃을 심었다. 몇 해 전부터 야생화가 눈에 들어왔다. 2월에는 무등산에서 바람꽃의 군락지를 발견했다. 집에서도 야생화를 보고 싶어 화원에서 야생화를 사다 심었다. 남은 땅에는 상추 씨앗을 뿌렸다. 꽃과 먹거리가 같이 자랄 것이다. 두서없이.   

   

  엄마의 마당에도 항상 상추나 고추가 자랐다. 마당도 작은 밭이 되었는데 바로바로 따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다리가 불편한 엄마가 먼 거리의 밭까지 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처럼 마당에 먹거리를 심었더니 코끝이 아린다. 마치 엄마와 마주 앉은 것 같다.      


  우리 딸들은 할머니가 해주신 김치를 먹고 고추장을 먹고 자랐다. 신혼 때는 그런 것들이 먹기 싫어 동네 언니들에게 나눠준다거나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상해서 버린 적이 많다. 지금은 페북이나 인터넷을 통해 좋은 고춧가루를 파는 곳이나 김치 파는 곳을 검색하기에 바쁘다. 맛이 좋다고 소문난 집도 맛을 잃고 소금을 잔뜩 뿌려 바로 먹지 못하고 삭힌 김치를 먹었던 맛만 못하다. 엄마는 ‘짜다’라는 말과 동일시되는 말이었다. 나이 들수록 입맛을 잃어서인지 남도의 맛이 짠맛인지 자꾸만 음식을 짜게 만들었다. 그런데 더 나이가 먹어 거동이 불편할 때는 오히려 싱거운 맛이 되어 버렸다. 제어하지 못한 몸과 맘처럼 맛도 왔다 갔다 했다.     


  마당에 풀을 뽑고 장독대를 닦았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장을 담그던 항아리를 시골에서 가져왔다. 우리 집이 한옥이라 구색을 갖추려고 가져온 장식용이다. 엄마가 쓰던 항아리는 몇십 년 된 거라서 거기에 매실청이나 술을 빚을 항아리로 쓰지 못한다. 항아리에도 독처럼 장맛이 박혀 다른 것을 했을 때 오염으로 인해 산패할 확률이 높다. 현관문 앞에 놓고 그 위에 작은 다육이를 올려놓았다. 장독을 바라볼 때마다 딸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도 할머니한테 음식 배워. 그래야 우리한테 해주지.”     


  아이들이 생각하는 어린 날 엄마는 음식으로 전해졌다. 시골에 갔다 올 때마다 차 안 가득 넣어주었던 음식. 된장이나 고추장 청국장 때문에 코를 막았음에도 할머니 하면 음식을 떠올리며 내게도 그런 정을 나눠주는 엄마가 되길 바랐다.     


  두 딸이 대학 기숙사로 나가자 집이 휑하다. 20여 년 육아가 다 끝났다. 힘들고 버거운 과정이 끝나자 내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었던 게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과의 이별이다.


  누군가가 내게 '넌 소설가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내가 나의 과거와 상처를 말하지 않고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삶에 있어 정확하고 단정하고 틀에 박힌 삶을 살려 애쓴다. 행여 시간이 남아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 그동안 ‘사회적 인간’이 되려 했던 시간이 날아가 버릴 것 같다. 물론 자유롭게 산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살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우울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상과 현실과의 간극이 커서 낮도깨비처럼 파괴의 신이 내 삶에 등장했다. 열심히 일하다가 도깨비를 만나면 술을 마셨고, 울부짖었다. 실체 없는 대상에 대한 원망으로 내 살을 파먹었다. 술이 깨고 정신을 차리면 잠시나마 정신을 놓았던 내 모습이 저주할 만큼 싫었다. 다시는 안 그래야겠다고 다짐해도 얼마 가지 못했다. 나를 잊는 방법은 일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지독하게 앓던 나에 대한 원망을 이제 끝내고 싶다고 생각하자 가장 먼저 어린 날 나와 화해하는 방법이 생각났다. 어린 나를 만들었던 가정환경에는 엄마와 아빠가 있다. 형제들이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 엄마와라도 제대로 이별하고 싶다. 어린 날 때문에 매우 괴로웠는데 남은 생까지 나를, 태생을 원망하며 살고 싶지 않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계시지만 앞으로 얼마 사실지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내가 과연 맞는가,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너무 빨리 결정하고 준비해 버리지 않는지도 걱정된다. 내가 과거나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켜켜이 쌓아두었던 원망 덩어리를 끌어당기면 이것으로 인해 형제들이 상처를 입지 않을 지도 고민이다. 딸들 앞에서는 유쾌한 척했는데 엄마가 참으로 서투른 사람이거나 원망으로 삶을 힘겨워한다는 걸 알면 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난감하다.     


  이런 결정을 하고 나서 이틀을 불안과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냈다. 힘들지만, 실망스럽겠지만 나를 위해 하기로 했다. 이건 이기적인 마음과는 다르다. 어린 나와 이별을 잘해서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싶다. 이별을 잘하고 싶다. 아버지 때처럼 갑작스러운 이별에 화해할 시간도 갖지 못해 또다시 나 스스로가 나를 망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이전 02화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