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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Apr 23.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이별을 준비한다, 005

요양 병원 면회 하기

  요양 병원의 전화번호가 찍히면 난 가슴부터 두근거린다. 오래간만에 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전화번호가 찍혔다. 부재중 전화가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거는 순간 요양 병원이라는 멘트가 나왔다.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요양 병원에서 전화를 건 이유는 매점에서 화장지를 사서 써도 되냐는 물음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짜증이 났다. 급해서 전화한 것이겠지만 가족들은 전화 한 통에 죄인이 되는 걸 모르는 걸까. 물론 화장지를 그냥 갖다 쓸 수도 없고,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입장은 이해하나 사소한 것 때문에 긴장했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엄마가 요양 병원에 계신 지 4년,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숱하게 드나들었으니 매점 이모나 간호사들은 내 얼굴을 안다. 매점 이모와는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엄마가 필요한 게 있으면 무조건 주라고 부탁했던 터였다. 굳이 병원 측에서 전화를 걸지 않아도 물건값을 지급할 수 있었다.


  “어머님이 막내 따님이 왔다 간 후 우울증이 깊어졌어요. 원래 우울증이 있었지만, 가족들이 왔다 가면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잘 돌보고 있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 나는 다음 면회를 가기 위해 전화 예약을 하려던 참이었다.

  엄마는 지극히 순박하고 순수하다. 나는 이런 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다른 엄마들처럼 굳세고 억척스럽고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또박또박하는 엄마를 원했다. 아빠에게 짓밟히고 자식들에게 치이고.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모진 소리를 들으면 반박하거나 반항하는 게 아니라 한쪽 구석에서 옷소매로 눈물을 찍어대던 모습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커리어 우먼이 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 뜻도 모른 채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 엄마처럼 안 살고 당당하고 멋지게 살고 싶었다.


  두 딸은 성인이 되었다. 육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홀가분했다. 둥지 증후군인지 몰라도 허전해서 미칠 것 같았다. 엄마처럼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일이 생각나 괴로웠다. 행여 친구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나쁜 남자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잔소리와 근심이 늘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엄마 같았다. 피식. 나도 엄마에게 배운 게 자식들을 위한 것밖에 없어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했지만, 귀결은 엄마 노릇이었다. 답답하게만 보였던 엄마의 삶이 스며들어 나도 엄마처럼 자식을 위해 살고 있었다.


  엄마는 요양 병원에 입원한 지 시간이 꽤 오래되었는데도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식들을 기다리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두 다리로 성성하게 걷는 걸 기대하고. 자신이 그랬듯 노후는 며느리 품에서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적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서글퍼졌다. 무슨 미련이 남아 기다린다는 건가? 지금껏 막내딸 외에 며느리나 아들이 왔단 간 건 손에 꼽힌다. 그런데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어떤 심정일까. 아무리 내가 잘해준다고 해도 엄마의 마음은 큰아들, 큰며느리에 가 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미련하다고 해야 하나.


  요양 병원에 면회를 갔다 오면 내 영혼이 한 스푼씩 사라진다. 입구에서부터 맡아지는 오물 냄새, 늙음의 냄새, 소독약 냄새. 그 냄새들이 뒤엉켜 도망치게 한다. 그동안 쌓였던 정이 흔적도 없이 사그라진다. 티를 낼 수 없어 웃으며 가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늘 눈물 바람이다.


  간혹 페북에서 요양 병원에 부모를 맡기는 사람은 불효자라는 말을 본다. 자신은 부모가 두 다리로 걸을 때까지는 보양하겠노라며 다짐한다. 엄마가 걸었으면 당연히 요양 병원에 모시지 않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전문적으로 간호할 필요성을 느꼈고,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맡길 수밖에 없는 자식들의 마음도 있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요양 병원에 부모를 맡긴 자식들은 늘 죄인 같은 마음으로 산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은 요양 병원에 맡기더라. 어쩔 수 없었다면서.


  지난번 면회를 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면회하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진다. 엄마가 기다리는 건 서울에 있는 큰아들과 큰언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주춤한다. 내가 왔다 간 후에 우울함이 깊어질 엄마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면회를 망설이는 건 엄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정작 면회 후 내 영혼이 한 스푼씩 사라지는 게 힘들어서 망설이지 않나 고민스럽다. 가도, 안 가도 힘든 게 요양 병원에 부모를 둔 사람들의 심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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