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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 Dec 03. 2018

#7. 고종황제의 꿈-환구단(圜丘壇)

날개를 펴지도 못하고 접은 둥지

환구단(圜丘壇)을 찾아 거닐다.

사울 시청 광장 주변의 높은 빌딩 사이로 환구단으로  오르는 3칸의 외문이 보인다.

환구단의 대문은 우이동 그린파크 호텔이 재개발되면서 발견되어 2009년 이곳으로 이전되어 복원되었다.

 문을 지나면 건물 틈새로 가파른 계단이 보이고 끝부분에 황궁우의 처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환구단으로 오르는 계단.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환구단은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선포하면서 위태로운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자 추진되었던 의미있는 장소이다.

황제로 등극하면서 중국과 대등한 관계임을 알리고 천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곳을 만든 것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과 붙어있는 곳이 환구단터이다.

소공동은 태종의 둘째 딸이었던 경정공주가 출가 후 거주하던 저택이 있던 곳으로 '소공주택이 있는 마을',소공주동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임진왜란이후 명,청의 사신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되면서 남별궁이라 불리었다.

고종은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장소(환구단)로 중국 사신들을 접견하던 남별궁터로 정하면서 사대사상을 단절하려는 의미를 주려 하였다.

당시 청일전쟁,을미사변,아관파천등 외세에 의해 나라의 종주권은 점차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환구단의 조성은 국권을 되찾고 독자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환구단 전경(사진참조:디스커버리)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0년 일제에 강압적으로 나라를 내주고 말았다.


환구단은 크게 세 영역으로 황궁우(천지신위를 봉안하고 선왕들을 추존),환구단(제사를 지내는 곳),석고(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세운 3개의 돌북)로 구분되어 있었다.

황궁우
석고

현재 환구단터에는 조선호텔과 주변의 건물들로 둘러싸여 과거의 위상은 찾아 볼수 없다.일제는 1913년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철도 조선 호텔을 세웠다. 그 이후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1968년 지금의 웨스턴 조선호텔로 대체되어 지금에 이른다.

황궁우와 조선호텔

다만 황궁우와 석고,삼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삼문(조선호텔 방면)에서 황궁우를 바라보는 방향

황궁우는 화강암 기단위에 세워진 팔각형 3층 목조건물이다. 난간위에 20여개의 해태상을 두어 화재를 막기위해 상징적으로 배치 되었다.

황궁우 스케치

지금은 소실되고 없지만 황궁우와 환구단으로 연결 되던 삼문 사이에 동무,서무의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 전사청,어제실,향대청등도 사라지고 없다.


하늘을 향해 제사를 드리던 황궁우는 주변 건물들로 하늘이 막힌채 쓸쓸하게 갇혀 있는 듯 보였다.

그림을 그리며 황궁우 뒷편으로 높게 서있는 건물들을 삭제하고 하늘을 열었다.


제국을 세우려한 고종황제의 꿈은 펼치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잠들었다.

42cm*2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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