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그렇게 무언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많은 일을 시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에 다분히 부산스럽다. 일과 사람과 마음이 모이고 온통 정신없는 달. 매해 1월이 그렇다.
그런데, 허당의2023년 1월은 사뭇 다른 모습으로 시작한다. 전혀 부산하지 않고 조금도 인천스럽지 않다.
지독한 독감으로 한 달의 절반을 병치레로 날려 먹고 보니 생겨난 희한한 시작이다. 결국 허당은 1월 마감글을 2월 둘째 날이 돼서야 겨우 끄적여본다. 동네에서 제법 성실하다고 평가받는 허당이 많이 아팠다는 증거다.
약 3년간 온 국민과 온 글로벌시티즌이 신경 쓰고 대비하고 전쟁을 치러온 건 코로나였다. 코로나에 온 신경이 가있는 그 틈새시장 무주공산에 살며시 찾아와 또아리를 튼 건 뱀같이 날카롭고 치명적인 독감이다.
허를 찔렸다. 이렇게 방심하다 허를 찔렸다를 한마디로 줄이면 '헛'이다.
한자만 분해 해석하는 게 아니다. 한글도 그리 할 수 있다.
'헛'은 방심할 허 에 화살촉 ㅅ이다. 합쳐서 헛이다. 방심하다 화살맞았다는 의미이다.
기가 막힌 분해와 조립이다. (집현전 출신이냐?)
그래서 기가 막힌 피자를 만났을 때의 표현이 피자헛 이리라. 일명 화살피자다.(아니면 말고)
부산에서 인천으로
헛에서 피자헛으로 오락가락하는 걸 보니
아직 이 인간에게 독감의 지독한 기운이 남이 있는 모양이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어느 쌀쌀맞은 그 날의 산책길에 으스스한 한기가 갑자기 스며든다. 감기몸살은 그림자처럼 달고 살아온 이력인지라 그 정도쯤이야 무시했지만 오만이었다.
몸은 침대로 알아서 기어갔고 마음은 무기력의 바다에 그만 풍덩 빠지고 말았다.
코로나 검사를 두 번이나 했지만 음성이란다. 그나마 다행이라며 명절을 준비하고 아이들 맞이할 준비를 하다가 완전 몸져 누워버렸다. 명절에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어머니도 찾아뵙지 못하고 황금연휴를 고스란히 침대에 갖다 바치고 나서도 곧 지나가리라 기대했지만 오판이었다.
기침은 폐부를 찌르니 허리는 끊어질 듯 위태롭고 목은 천 겹으로 갈라지니 호흡은 불안하다.
책 한 페이지 못 읽고 한 줄의 문장을 못쓸 지경에 이르니, 새삼 일상의 단순한 호흡과 평범한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뭘 꼭 겪어야만 알게 되는 이 한심지경은 도무지 그 끝을 알 수가 없으니 국대급 허당의 끝판왕이다. 자신이 지은 본인의 별명에 감탄하며 본 매거진의 이름을 슬쩍 쳐다본다. (허당을 따라서 화면의 맨위를 쳐다보는 독자님은 착하고 멋지고 어여쁜 분임에 틀림없다!)
코로나가 아닌 이상, 격리수용의 휴식을 취할 수 없으니 꾸역꾸역 회사에 기어 나간다.
병중에 일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으나 2주 정도 업무의 삐걱거림은, 계획된 신사업 추진 전체 기간 내에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으니 딱히 애면글면 하지 않는다. 바로 뒷자리에 앉아계신 사장님의 따가운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믿을 건 직장생활 34년 차의 짱짱한 관록 뿐이다. (너무 자주, 너무 오래 아프다고 타박하지 말아요. 사장님아.)
사실, 사장님과 허당은 서로 말이 필요 없는 사이다. 숫자와 결과를 보여주면 되는 일이니. 아주 심플하다.
정작, 애면글면 하는 일은 따로 있다. 글쓰기다.
글쓰기라는 행위는 무기력이라는 역과 회복력이라는 역을 오고 가며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이다.
수많은 자아와 나름의 스토리를 싣거나 안고 떠나는 열차는 신나게 달리거나 때로는 멈춰 쉰다. 자연스럽다.
적당한 시점에 쉬고 적절한 때에 다시 달리는 일을 원활한 순환이라 한다면 무기한 파업이나 과도한 폭주는 순환을 이루지 못한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허당의 글쓰기가 독감이라는 복병을 만나 장기 파업에 돌입해 무기력이라는 역에서 하염없이 멈춰 섰다.
기침하는 순간은 오로지 몸의 시간이다.
읽고 쓰는 행위는 고사하고 단어와 문장을 떠올리거나, 한 문장을 위한 상념의 행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기침과 이어지는 온몸의 저릿함과 얼얼함이 무한반복되는 몸의 시간에 글은 없다.
한 번의 기침 이후와 다음번 기침 사이의 짧은 시간마저도 글의 시간은 없고 아픔의 공포만 가득하다.
기침과 노트북 자판은 치열한 전쟁을 벌이지만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게임이 안되니 슬픔만 흐른다.
이렇게 1월을 보낸다. 알게 모르게 어쩌다가 1월이 갔다.
그 어느 달 보다도 따뜻한 희망과 응원의 안부로 시작한 1월.
새로운 기대와 설레는 계획으로 시작했으나 아픔과 허탈만 가득하니 더욱더 아쉬운 1월이다만,
1월은 원래 그런 계절이다. 별달리 아픈 일이 없어도 희망과 절망이 유난히도 빠른 속도로 오고 가거나
교차하는 계절이다. 잔뜩 힘주고 호기롭게 계획하고 시작한 일들이 빠른 시간 안에 덜컹거리거나 삐걱거리니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마저 따라온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는 자책도 쫓아온다.
그렇게 많은 감정이 오고가니
1월의 한 달이라는 시간은 다른 한 달과 달리,
한 계절이라는 명칭을 부여할 만하겠다.
그런 계절이다. 1월은.
근 보름동안 달라붙어있던 독감은 결국 링거주사 두방을 빵빵히 맞고 나서야 슬슬 꼬리를 감춘다.
삶을 이어가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 신발끈을 조여 매니, 회복을 위한 발걸음으로 묵묵히 걷는 마음은
다시 쓰는 마음으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조급해하지 말자. 나의 철마는 달리고 싶고 곧 다시 달려 회복력 역에 이르리라는 믿음을 갖자.
나의 회복력을 내가 믿어야지 뭐 어쩌겠는가.
다시 걷자.
다시 쓰자.
한줄요약 :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건, 곶감이 아니다. 독감이다. 자꾸 아픔보다 더 강한 건, 링거가 아니다. 다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