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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Feb 06. 2023

폭풍의 계절

자신뿐 아니라, 가족마저 병들게 하는 병.

오랜 시간의 재활이, 그 보다 더 오랜 막막한 여정을 각오해야 하는 병.

나아지리라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서는 병.


치매가 그렇고 암, 중풍, 치명적인 교통사고부상 등 여러 중대 질병에 따라붙는 무거운 수식어들이다.

살아가면서 이런 병들과는 멀리하고 싶으나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 지인에게 이런 병이 왔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일상은 흔들리고 시간은 불안이라는 블랙홀로 빠져든다.


그런 질병이 나에게도 왔다. 약 7년 전 일이다. 뇌졸중이다.

뇌졸중은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나뉘는데 뇌혈관이 터짐을 뇌출혈이라 하고, 막힘을 뇌경색이라 한다.

일상은 무너졌고 시간은 그 순간에 막히고 멈춰버렸다.




인하대 병원 응급실,

엠블란스가 데려간 그곳에 누워 있다. 간호사, 의사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나는 말없이 누워만 있다.

아들의 급작스런 응급실 입원소식에 잠시 혼절한 노모는 대기실에서 혼신을 다하여 몸부터 일으키려 애쓰고 계셨고, 뇌 MRI촬영을 마친 나는 응급실 허공만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기본적인 조치만 해놓은 의료진은 내 침상에 차분히 자리하지 않는다. 응급실은 수많은 환자로 북적였고,

온 사방에서 위급상황을 처리하고 있으니 이곳은 전쟁터. 삶과 죽음의 치열한 전투현장 최전선이다.


출입문쪽에서 아들이 뛰어 들어온다.

의사가 물어본다. "아버님,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시겠어요?"

멍하던 동공에 아들의 얼굴이 스쳐가듯 보인다. "우혁이. 김우혁입니다. 우리 아들이에요." 이렇게 말을 했으나, 스스로에게 들리는 본인의 목소리는 "우리 아들"에서 흐려진다. 어눌한 발음과 동시에 절망의 눈물부터 차오른다. 내 상태가 안 좋구나. 시야가 더욱 흐려진다.

아들은 내 손을 꼭 잡고 말한다. "아빠, 저 왔어요. 이제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아들의 눈을 차마 볼 수가 없다. 얼마나 놀랐을까. 나의 증상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아들이 놀랬을 그 마음이 더욱 안쓰러우니 시야는 자꾸만 자꾸만 흐려진다.

아빠의 약한 눈물을 아들이 볼세라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겨우겨우 참아낸다.




일산에 있는 국립 암센터에서 현직 간호사로 근무하는 의료진답게, 아들은 침착하고 차분하다.

응급실 담당의사와 간결하고 차분한 논의를 마치고는 쏜살같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아들이 오기 전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상황은 속전속결 진단이 내려지고 급박하게 돌아간다. 째깍째깍 타임워치가 시작되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환자실로 옮긴 후, 3일간에 걸친 집중 치료가 시작되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은 말이 없다. 대부분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태다. 그 안에서 환자 가족들의 피나는 통곡을 대여섯 번 들었다.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환자들은 유명을 달리했고, 망자는 긴 침묵이 시작되는 다른 방으로 이동된다. 생사의 사투를 벌이던 존재의 침상자리에 남은 건 유혈 낭자의 흔적과 가족들 통한의 눈물뿐.

 

존재는 유한하지만 기억의 DNA는 남은 아들 딸에게 흐르고 흘러 마침내 함께 살아가니 존재는 무한하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한 번의 호흡은 과학의 손에서 종교의 손으로 넘어가는 통로일까?

종교가 영원한 삶을 약속할 수는 없겠으나, 망자의 영혼과 산자의 사랑을 손잡아주는 그런 역할은 종교의 몫이 분명하리라 믿는다.

헤어짐의 시간은 단 5분. 침상정리 정리시간은 25분. 거의 30분도 안되어 그 자리는 다른 환자로 채워진다.

소멸의 시간은 고통의 시간보다 오히려 짧다.  




위급 상황을 가까스로 넘긴 나는, 뇌혈관센터의 뇌졸중 전문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절규한다. 어느 정도 정신은 있으나 몸과 혀가 의지대로 움직이질 않으니 절망은 절규가 되는 것이겠지. 침상은 절규로 가득하다.

반은 죽고 반은 살아있는 상태. 이 것은 차라리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까. 거의 모든 침상에서 들려오는 환자들의 끝없는 절규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의 비애이리라.


약 열흘간의 악몽 같은 밤이 지나가고, 다행히 상태가 호전된 나는 하루 10분이지만 병원 복도를 걸을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다. 복도 벽을 따라 길게 붙어있는 나무 손잡이를 잡고 휘적휘적 걷는 불안한 발걸음이지만 이 휘적임은 절망보다는 희망이 이끄는 발걸음이 되었다.

응급실에 실려온지 보름만이다.


복도 끝에 위치한 작은 휴게실에서,

제1 경인고속도로 초입 사거리와 인천항으로 이어지는 초겨울 시리도록 푸른 야경을 내려다보며

딸의 손을 꼭 잡고 다짐했다.

"아빠는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 병도 반드시 이겨낼 거야. 걱정 말아라. 딸아"

띄엄띄엄 말하느라 온전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딸은 다 알아들었다. 내 손을 꼭 쥔 딸의 의지는 아빠보다 강했으며 희망의 눈빛은 더욱 또렸했다.  




한 달간의 지난한 재활을 거쳐 어느 정도 회복에 이르자 더 오래 병원에 있을 수는 없었다. 밀려오는 환자들로 병상은 턱없이 부족했고 조금이라도 회복한 환자에게는 통원치료를 권고받았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나는 다시 숙소인 여관방으로 돌아왔다.


가족들마저 병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재활의 기나긴 여정을 오롯이 감내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싶었다.

내 삶에 찾아온 병도 아픔도 극복도 내가 감내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기에.


여관방의 조그만 창문에는 구멍 숭숭 난 모기장뿐, 햇살 한 점 없는 그곳에서 4년이란 진공의 시간을 보냈다.

네 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큐브 속 진공박스에 갇힌 내 모습을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울 속에 또렷한 병들고 지친 한 인간의 실상은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엄혹한 현실이라고 준엄히 말해주었다.

좌절과 상실, 희망과 용기는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화해하면서 천지사방으로 흩어지고 모이고 휘몰아친다.

온갖 감정의 널뛰기와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치열한 재활과 용기의 눈물이 그 헛헛한 시공간을 한땀한땀 채워나간다.


삶의 돌부리에 걸려 크게 넘어진
폭풍의 계절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다시 일어서려는 시간은 묵묵히

새벽과 햇살의 계절로 나아간다.
그 무심한 계절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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