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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Feb 22. 2023

걷다 보니 눈치챈 것들

걷기가 무슨 큰 운동이 되겠어?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고 걸은 건 아니다. 집 근처에 공원이 있으니, 돈도 안 드니 그저 올라가 걸을 뿐.

이 말은, 산에 왜 오르냐는 물음에 대해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오른다는 멋진 등반가들의 걸출한 답변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별 기대 없이 걷더라도 궁금하긴 하다. 걷기의 효능은 무엇일까?

친절하게도 대한 걷기 협회에서 이미 정리한 사항은 이렇다.

지방감소, 스트레스해소, 혈압안정, 비만해소, 노화방지... 그리고 뇌졸중 예방.

대부분의 효능은 얼추 알겠고, 심장병/뇌졸중예방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심장병, 뇌졸중 예방을 위한 빠른 걸음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심장이나 뇌에 영양을 공급하고 있는 동맥을 노화시키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혈액 중의 LDL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등의 물질을 필요이상으로 늘리지 않는 것이 소중합니다. 걷기 운동은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일으켜서 고밀도 작은 알갱이 비율을 줄입니다. 더욱이 동맥경화 예방작용으로 된 HDL 콜레스테롤이 역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콜레스테롤과 중성 지방은 빠른 걸음과 같은 중정도 강도의 운동을 장시간 계속하면 소비되고 효과적으로 알려져 있다. - 출처 : 대한 걷기 협회 http://www.walk4all.or.kr/walking_03.html




큰 병에 걸려 힘들었던 시절을 통과하면서부터 선택하고 시작한 것은 걷기 운동이다. 비용도 무료고 값비싼 장비도 필요 없다. 팔다리만 있으면 된다. 대략 7년째 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한 재활의 터널을 버티고 건너오게 되었고

90Kg에 육박하던 떡대 체중은 70kg으로 Down 되어 나름 슬림해졌으며, 빵빵히 불어 오른 호빵 얼굴은 이제, 날렵한 턱선의 학창 시절 얼굴도 얼핏 설핏 보인다. 170~190을 오르내리던 혈압은 120~130으로 안정권을 유지하며, 하루에 3천 보도 버거워하던 체력은 2만보를 걸어도 별달리 피로감이 없다.

젊은이들처럼 특별히 헬스클럽을 다니거나  성큼성큼 뜀박질을 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의사 선생님의 권고나 대한 걷기 협회의 안내만큼은 증명되는 수치상, 신체상의 효능이라 하겠다. 전문적인 운동생리학 측면의 보행효과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온몸으로 명백히 입증한 효능이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헬스를 했으면 울퉁불퉁 몸짱이 되어 있겠고 마라톤을 했으면 더욱 날렵한 인간이되어 있겠지만, 아서라. 무리다. 그저 걷기만으로 이정도의 효과를 봤으니 감사하고 또 고마운 효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프레데리크 드로는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다.>라는 책에서 걷기에 대한 생각,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철학이라니... 묵직하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많은 철학자들의 걷기에 대한 명언이나 어록들은 차고도 넘친다.

니체 - "지면에서 멀어지기 위해 걸어라." 걷기는 명상과 비슷하며, 걷기를 통해 마음과 정신을 집중시키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는다.

괴테 - "내가 이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것을 보고 겪고 느끼면서 참다운 나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 걷기는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걷는 것이 자연에서 온 행위이며 자연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루이스 알테우스 베르남 - 걷기는 "머릿속의 사색"을 도와주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걷기는 영감을 주고 창의적인 생각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루소 -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다윈은 아침저녁으로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하며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을 썼다.
- feat 척척박사 이세정 작가님


이러한 철학자들은 걷기를 각자삶의 방식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걷기가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긍정영향을 미친다는 효능에 대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인류의 화려한 지성사는 걷기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걷기에 대한 평가는 절대 가볍지 않다.


여러 철학자 중 가장 마음이 가는 현인은 역시 니체다.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라고 말하는 니체는 전문 산책러였다. "나는 나그네요 산을 오르는 자다. 내 어떤 숙명을 맞이하게 되든 그 속에는 방랑이 있고 산 오르기가 있다.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다." 고질병인 만성 두통을 이겨내려고 니체는 걷고 또 걸었단다. 니체는 아픈이였다.  동병상련의 마음일까? 그래서 더 마음이 간 걸까? 아픈 산책러!

그러니 니체랑 친구 먹기로 했다.

이 얼마나 당찬 동네아저씨 인가.


프레데리크 드로, 작가의 책 뒤표지에 결국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걷는다. 고로 철학한다." 

오호라. 내가 그동안 설렁설렁 얼렁뚱땅 설렁곰탕 철학을 하고 있었구나.




시인의 시선은 또 어떠한가 들여다보자.

<걸으면서 눈치챈 것>      - 신광철 시인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 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어긋남의 반복이라니.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나가는 삶에 비유한다.

어떠한 괴학적, 수사학적 표현보다도 짧은 몇마디로 간결하고 깊게 마음을 울린다. 시란 이렇게 단단하고 

시인은 그렇게 세상과 인간을 통찰한다.


니체보다 나에게 더 가까운 현자는 역시 광철이 형이다.




가까운 이웃은 어떤 얘기를 할까? 지나가는 아저씨와 돌발 인터뷰를 나눠보았다.

걷기의 묘미는 만보기에 찍힌 하루걸음수의 총합에 있는 게 아닐 겁니다. 사시사철 다채로운 계절의 멋과 정겨운 이웃들의 미소, 모든 삼라만상과의 유쾌하거나 고독한 대화는 몇 마디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넉넉한 풍요로 하루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공원 곳곳을 채워가는 발자국은 한 땀 한 땀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 켜켜이 쌓여가는 사색의 역사, 삶의 역사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기에 보이지도 않고 측정할 수도 없지만 이 역사는 만보기의 숫자보다 훨씬 뿌듯합니다.

걷다 보니는 "오다 보니, 지나가다 보니 주워왔어. 툭" 처럼 어쩌다 툭 얻어걸리는 그런 건 아닙니다.
피 땀 눈물이 함께하며, 살기 위해 걷는 존재의 치열한 침묵은 인생의 시린 계절. 겨울을 나게 합니다.
걷기는 나를 살린 선명한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역사를 쓰고 무늬를 짜며 계절을 지납니다.

이 동네, 이 사람 심상치 않다. "아저씨 이름이 뭔가요?"

"우리 사이에 굳이 통성명은 필요치 않을 텐데...

저는 허당아야과묵헤롱승기생생선미언니 김호섭이라고 합니다."


한 줄 요약  : 걷다 보니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니 쓰게 된다.쓰려면 생각해야 하니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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