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또는 마음이 한꺼번에 몰아쳐 정신 못 차리는 나날이 있다. (눈보라냐? 몰아치게? 입추가 지난 지 언젠데 아직도 눈타령 보라타령이람)
생각이 복잡하고 마음이 뒤숭숭하니 중요한 일이나 급한 일이 뭔지. 구분은 언감의 생신날이고
우선순위고 나발이고 미로 속의 길은 당연지사, 빤히 보이는 일방통행 길에서마저도 눈뜨고 헤맨다.
오죽하면 며칠 전엔 덜 마른 양말을 신고 출근하기도 했다. 참 나... 어디로 갔느냐 어처구니야.
사실 따지고 보면, 어느 특정 시점에 유달리 그러는 건 아니고 늘 일어나는 일상 다반사이지만, 이 복잡한 정신머리를 겨우겨우 정돈된 일상으로 끌어와 멱살 잡고 끌고 가다가도 툭툭 옆구리 치고 들어오는 다양한 변수들로 그나마 챙겨가는 일상과 루틴은 어이없거나 허망하게도 흔들린다.
이 녀석들은 나의 멱살보다 분명 몇 배나 강하다.
점입가경으로, 요즘 결정타를 먹이는 태풍의 눈은 회사 일이다.
3년이라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 맞이한 포스트코로나 시대. 바이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고 해외 오프라인 전시회 개최소식과 초청이 잇따른다. '어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이렇게 빨리들 움직인다고?'
여러 글로벌 경제지표는 "이 바보야. 이미 수많은 국가의 경제지표는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데, 한국 너네만
거꾸로 하향곡선이야 정신 못 차릴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외부환경의 변화가 예상보다 빠르다.
연초부터 추진하는 신사업은 파트너의 명분 없는 시간 끌기 공세에 불량식품 쫀득이처럼 늘어져만 가고
돌파구나 차선책의 옆길은 대부분 막혀있다. (침대축구하냐? 중동국가들이 울고 가겠다. 이 인간들아.)
내부환경의 변화도 만만치 않다.
사장님의 따가운 눈초리가 연일 뒤통수를 뎁힌다.
게다가 삐걱거리는 건강 걱정에 날이 어슴프레 밝아오고,
글쓰기는 한 꼭지는커녕 한 문장도 끄적거리기 버거우니 밤이 하릴없이 저문다.
쌓이는 건 스트레스고 날리는 건 바이든... 아니 아니지. 얇디얇은 머리카락이다. (휴... 잡혀갈 뻔했다.)
이런 걸 우리는 총체적 난국이라 부른다.
아라치?
TV화면에 언뜻 스쳐가는 자막을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잡아챈 건 며칠 전이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막내형 이 강인의 팬클럽 이름이란다. 시각으로 입수된 문자정보는 전두엽에서 해체되고 조합되며 의미가 해석되고 정의가 분석된다. 가뜩이나 정신머리 없는 난리통에 웬 아라치냐.
허이구야. 내가 이리도 예민 발랄한 인간은 분명 아닐진대.
아라치? 아뭐지? 아리아라 으리아리 며르묘르 마리마라...돌굴러가는 소리가 얼그럭 덜그럭하더니
곧 답을 내놓는다. 그렇지. 마루치 아라치!
아직 그래도 써먹을만하군! 자네 이름이 뭔가?
전두엽이라고합니다.
전두엽. 두엽...도엽..주엽..전두후두 후두두둑 전두두화...
헛! 땡전뉴스의 그...
전두엽의 전두엽이 굴러온 돌을 다시 또르르르 굴리니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는 정신머리 없는 놀이는 이제 그만하자. 가뜩이나 이 총체난국의 시국에.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님들이 "이 인간 상태가 상당히 심각하군.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인간일세." 하며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눈앞에서 들린다.)
들어는 보셨는가? 태권동자 마루치 아리치. 7080 시절 로보트 태권 V와 쌍벽을 이루던 전설의 고전 만화.
여기서 남주는 마루치. 여주는 아라치다. 그 어여쁘고 당찬 아라치가 이 강인 팬클럽으로,
2023 현실로 소환된다. 이렇게 뿌리를 찾거나 궁금증을 해결하는 일은 언제나 기쁘다.
답을 찾고 나서의 피식한 웃음이나 흐뭇한 미소는 언제나 나 혼자의 몫만큼 딱 한 꼬집이다.
(마루치 아라치를 알면서도 애써 모른다고 회피하는 독자님들의 연식부정 애련한 마음이 귓속에서도 보인다. 괜찮다. 이실직고하시라고 따지진 않으니)
주제가부터 생각난다.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
마루치 아라지 마루치 아라치 얍!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의 주먹에
파란 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이어서 요괴인간 뱀베라베로, 황금박쥐, 엄마 찾아 삼만리, 개구리 왕눈이.
봇물 터지듯 주제곡들이 쏟아진다.
큰일이다. 이 말썽꾸러기 전두엽이 결국, 수능금지곡에 버금가는 마력의 노래둑을 무너뜨리고 한없이 쏟아내니 온종일 무의식세계에서 흥얼거린다. 점입가경이다. 모처럼 즐겁고 신나지만 이를 어쩌냐.
안 되겠다. 이러다가 정말 정신은 우주의 미아가, 마음은 길 잃은 어린양이, 몸은 파란만장 게으름이 스머프가 될지니. 주섬주섬 전투복 (늘어난 산책룩)과 전략무기 (노트북, 메모장, 펜)를 챙겨 들고 비장하게 문밖으로 나선다. 날은 흐리고 비마저 내린다. 그래도 전진한다. 일요일마다 개최해 온 일요 커피타임이라도 갖자.
이마저도 얼마만인가...
눈치채셨겠지만,<마루치 아라치>는 이 글을 쓰게 된 배경과 마중물이며 현장 속의 생생한 방아쇠다.
(고마워요. 강인형! 아라치 포레버~)
마루치 아라치 노래도 글로 적고 이 허술하고 정신머리 없는 상태의 감정도 적는 이유는 바로 "비움"이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쓰는 자체가 비움이라는 걸.
내 안에서 나와 글로 옮겨가니 내 안은 비움이다.
너무 차면 감당이 안되고, 휘둘리니 흔들리는 것이겠지.
이렇게 세상만사에 휘둘리고 흔들릴 때마다 다스리고 제어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퍼뜩 떠오르는 게 있다.
얼마 전 써본 문장의 그녀. "정아"다.
내 복잡한 머리 정수리위로 새로운 자아를 둥실 띄우자.
문장공부하는 모임에서 써 본 글을 찾아본다. (#책강대학 #문장공부 # 전유정작가님)
1) 원문장
- 인간은 자기 자신조차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남(타자)’이다. (함돈균-사물의 철학)
2) 나의 문장
-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나, 머리로 가슴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자아가 나라고 인지하는 나, 존재는 이런 나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정수리 위 어디선가 둥실 떠 있으면서 오류만발의 불완전한 이 인간을 관찰하는 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찰자로서의 나는 나인가 나를 넘어선 타인인가. 관찰자는 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통제하는가? 그럴 리가. 일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고 인간은 허술하다. 어느 순간 관찰자도 감정과 생각으로 한 몸이 되어 다시 오류를 범하거나 헤맨다. 이렇게 헤매는 모습을 보면 관찰자도 분명 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오류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나는 영영 나를 통제할 수 없는가? 아닐 것이다. 다시 새로운 관찰자를 둥실 띄우면 된다. 정수리 위로.
"정수리 위로 띄운 자아"를 그냥 줄여서 "정아"로 부르자. 다시 내려와 가라앉아 헤매면 또다시 띄우면 된다. 존재는 가볍다 하니 생의 끝, 그날까지 무한반복의 도전이다. 새로이 둥실 띄우는 일. 글 쓰는 작업이 그 일이리라. 나를 보고 나를 관찰하는 일이니.
정아는 지배자가 아니다. 잃어버린 목적지를 다시 알려주며 함께 걸어가 주는 친절한 나다.
통제와 지배아래서는 수동이고 무력이다. 정아는 능동이고 나만의 권력이다. 나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건 오로지 나뿐이니까.
답은 역시 내 안에 있었다. 잠시 잊었을 뿐이다.
반갑다. 정아양.
오랜만이니, 정신 번쩍 나는 칼칼한 칼제비로 점심이나 한 끼 하자꾸나.
카페를 나선다. 둥실 떠오른 정아와 함께.
마침 비도 그치고 둥실 햇님이 중천에 떠있다.
이 정신머리.
비우기에,
다스리기에,
딱 좋은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