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니캡

by 김호섭

무엇에나 이름 지어 부르기 좋아한다. 오래된 습관? 또는 혼자 놀기 끝판왕들만이 안다는 초절정 레벨 필살기다.


이런 식이다.

공원 고양이에게는 인천블루, 황금마녀, 까칠블랙

공원 나무들에는 황장군, 어느신 (고목 느티나무)

산책러들에게는 구름모자 어머님 (모양은 같으나 색은 전부 다른 모자를), 부채도사 여사님 (사시사철 부채를)

서재라고 하기에는 궁색하지만, 청예담, 호자까야, 호호 포차, 카페 호바리….

(안방과 주방 사이 조그만 공간인데 나라 허가 없이 내 맘대로 용도변경 자유자재임)

집 근처 높은 오르막은 통곡의 언덕, 홀라당 넘어졌던 계단은 통한의 계단.

그리고, 그 유명한 인천노을주.


뭐 딱히 근사한 네이밍은 아니겠다만, 이러면서 놀면 혼자서도 은근 재미나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꽃이 되어 나에게로 왔다던 시인의 말처럼, 사물 또는 대상은 생명이 부여되고 어떤 의미가 되어 다가오며 새롭거나 신박한 대화가 시작되기도 한다. 불현듯, 길 위에서 문장이 되기도 한다. 물론, 속으로 말하는 혼잣말이다. (정신 이상한 사람 아니니 무서워하거나 도망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얼마전에, 딸이 선물이라며 건네준다. 빵모자~!

유럽 신혼여행 길, 토트넘 홋스퍼 홈구장에서 손흥민의 경기를 직관하고, 축구 좋아하고 글 쓰기 사랑하는 아빠에게 완전 딱이라고 골라왔단다. 너무도 귀하고 벅찬 선물이다. 사랑가득한 마음이다. 영국에서 온 귀한 아이. 이름을 지어본다..

넌 이제부터 월클쏘니어니니캡이다.

줄여서 투니캡이라고 부르마.

(어니니는 딸의 작가명 입니다~ 인스타 @oooonin_room)


이름을 붙여주긴 했지만, 정작 외출 나갈 때 쓰고 나가진 않는다. 부끄럽고 어색한 이유가 있다. 빵모자는 풀꽃 시인 나태주 작가님이나 백반 기행 허영만 화백님 같은 명인고수들 정도의 나이나 공력이 되어야 어울린다. 나는 아직 소년이니 투니캡을 쓰고 나가면 강호의 고수들이 끌끌 혀를 차며 건방진 녀석! 할 것 같다.


딸아. 지금은 그저 청예담에서 혼자 실컷 쓰고 신나게 문장을 쓰도록 하마. 어느 훗날, 아빠 스스로 확신이 설 때, 그럴 때. 투니캡쓰고 글 벗님들 모임에도 나가고, 어느신 나무 아래에서 구름모자, 부채도사님과 자판기 커피 한잔할게. 넘 섭섭해하지 마렴. 고마워. 사랑해.


맑을 청, 이를 예, 말씀(이야기) 담 : 맑은 이야기에 이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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