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문장은 무엇인가

by 김호섭

P5. (첫 문장) 소에지마 하지메는 소실점을 등지고 있었다.

P27. 어두운 복도 안쪽으로 뻗어있는 소실점에서 하지메까지의 거리가 아주 짧아져 있었다.

P474. 사라질 준비. 그것은 큰 고리를 중간 정도의 고리로 줄이는 일. 작은 고리를 중심을 향해 더욱 축소해 가는 일. 고리였던 것은 결국 점이 되고 그 작은 점이 사라질 때까지가 그 일이었다. 하지메의 등에서 뻗은 보이지 않는 선 끝에 있는 소실점은 지금 에다루 어딘가에 더는 움직이지 않도록 핀으로 고정되어 있을 터였다.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또 하나의 벽돌책을 드디어 완독 하였다. 역시나 한 달 정도 걸렸다. 틈틈이 읽다 보니 앞 줄거리를 잊어버려, 다시 보고, 보고 또 보고... 전반부만 새카매지는 어느 영어책에 버금간다. 어찌 되었던, 학교 방학 기간에 마쓰이에 마사시 책 세 권은 읽자고 다짐하고 실행했으니, 공식적으로 나의 방학은 이제야 끝이 났다. 가을 학기 시작된 지가 한참이나 지났건만…. 하여튼 게으르미 스머프 뒷북 대마왕이다.


[消 사라질 소 失 잃을 실 點 점 점].

첫 문장의 소실점에 마음이 온통 빼앗겨, 읽는 내내 작가가 어떤 의미로 이 단어를 풀어갈지 무척 궁금했다. 기억의 점멸, 생의 소멸에 이르는 인간의 운명을 소실점이라는 단어와 촘촘한 스토리로 명료하게 설명해 낸다. 첫 문장의 의미와 힘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두꺼운 벽돌책을 가로지르는 단 한 줄의 문장은 결국 제목이겠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특별히 긴장감 넘치는 스펙터클이 없어도 묘하게 빠져드는 스토리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힘일 테니 어떤 글이 과연 매력적인 글인가 생각이 많아진다.




어반 드로잉이나 다른 미술작품에서도 기준점은 소실점이다. 결국은 사라질 점이 삶에도 예술에도 기준이 된다는 의미는 아이러니하면서도 깊다. 생각을 좀 더 펼쳐보자. 만일, 작가의 말처럼 하지메의 등에서 뻗은 보이지 않는 선 끝이 고정핀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교차한 선이 다시 무한 연장되어 퍼져 나간다는 가설이 있다면 어떠할까. 하지메가 서있는 위치와 동일하게 소실점 너머에 다른 하지메가 서 있다는 가정. 이른바 모든 물질은 입자이자 파동이니 동시에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양자 이론에 기대어 보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빅뱅 같은 우주 폭발이 엄청난 대사건이 아니라, 우주 어디에서나 소실점을 지난 우주의 연장선에서 늘 일어난다는 팽창우주 이론이다. 그러하다면, 소실점은 또한 재생점이기도 하겠지? 사라짐과 동시에 생성되는 그런 의미도 있지 않겠어?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부정하려는 가녀린 먼지 같은 기대는 잠시의 위로라 해도 좋겠다.




자기 객관화. 어제, 학교 수업에서 배운 단어다. 소설을 쓸 때 필요한 덕목이라 하는데, 지극히 주관적이고 온갖 감정 과다 충만한 내가 과연 진정한 자기 객관화를 이룰 수 있을까? 팽창우주 이론이나 소실점의 연장선 같은 이론을 끌어와 우주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자기 객관화를 부탁해 보려다 말았다. 너무 멀다.


사실, 팽창우주이론을 세세히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면 머리 아프고 복잡하다. 이럴 때는 그저 가깝고 정겨운 문학적?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내 정수리 위에 나를 관찰하는 또 다른 자아를 둥실 띄우는 거다. 이른바 "정아의 이론"이다. 소년이 주장하고 내세운 가설이니 스스로 증명하여야 한다면 모르쇠로 일관하련다. 다만, 정아를 통해서 일상에서 오가는 불안과 무기력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알아채고 잘 흘려보낼 수 있다면 소실점에 다가가는 동안에는 제법 쓸만한 생활의 꿀팁이 될 수는 있겠다고 슬며시 외쳐본다.


그렇다고 새로운 정아의 이론을 학계에 발표하진 않으련다. 이미 수많은 학자가 한 말이고 이론이니 이름만 그럴싸하게 짓고 괜히 나섰다가는 꼴밤 맞기 딱이다.

그저 오늘은 정아랑 점심이나 같이하자.

무거운 벽돌책은 당분간 멀리 두자, 다짐하면서.

이렇게 정신머리 없고 맥락 없는 글도 자제하자, 반성하면서.


한 줄 요약 : 내 인생의 한 문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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