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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Feb 04. 2024

겨울의 뜻


아이구. 쏘니가 사람 잡네요.

가뜩이나 골골대던 몸뚱아리인데, 어찌 이 상황에 방방 뛰지 않을 수 있으리오.




아니, 축구를 하랬더니, K-드라마를 쓰고 있는 국대팀.

토요일 새벽, 아시안컵 호주와의 경기는 한마디로 미쳐버린 역대급 경기였습니다. 며칠 전, 사우디와의 역전승 경기에 너무 가슴 졸여 프라이팬 위 졸아붙어버린 쫄깃 심장 때문에, 호주전은 전반전만 보고 쿠팡플레이 앱을 껐더랬지요. 졌구나. 에휴. TV 내다 버리기 잘했다.

그만 자자 하면서요.


새벽 어스름 선잠 꿈결에 인천 송월동 소나무 위로 둥실

보름달이 떠오르더군요. 아니. 저건. 달이 아니고, 공이었습니다. 축구공. 머나먼 이국땅. 선수들은 피 말리게 뛰고 있는데 넌 어찌 달콤한 수면에 취하려 하느냐. 벌떡 일어나, 운기조식하고 가부좌 틀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 긋고 쿠팡 앱을 다시 켭니다. 후반전 막바지, 절체절명의 순간. 쏘니가 싸커루 네 명의 숲을 헤치고 페널티킥을 얻어냅니다. 희찬이 형이 담담하고 쿨하게 냅다 성공시키고,

연장전에서 다시 쏘니의 인크레더블 극장골.


아이고. 쏘니 희찬이 아버지. 어머니.

어찌 저리 멋진 아들을 낳고 키우셨나요.

아무리 골골 소년이라도 이 꼴꼴에 어찌 광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옆방 어머니 놀라실까 봐 환호성은 생략하고, 소년은 어두운 방구석에서 한참을 방방 뜁니다. 춥다고 징징. 아프다고 징징. 지쳤다고 징징대더니 방방이라니. 이번 겨울의 징징 삼대장은 엄살이었나 봅니다.


경기가 끝나고, 그라운드에 엎어져 탈진한 쏘니를 보면서. 소년은 침대 모서리에 엎어져 징징 웁니다. (이 징징은 앞서 언급한 삼대장과 다른 징징입니다) 투혼의 대한민국. 쏘니는 팀의 진정한 리더였고

막중한 부담과 무릎의 고통을 감당하고 이겨낸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인성과 실력을 두루 겸비한 이 땅의 아들입니다.

저 초롱초롱한 눈동자 좀 보세요. 참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수입니다. 국가대표의 무게란 이런 겁니다. 월클의 품격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이 땅의 리더는 누구인가요. 선진국 문턱에서 어느 날 눈 떠보니, 후진 야만의 시대. 이런 젠장 억장이 무너집니다. 리더의 무게와 책임을 감당할 자. 누구인가요. 감당이나 할까요?


뜨거운 감동이 차가워지기 전에, 애써 서둘러 질문을 바꿔봅니다. 이 방구석의, 이 몸뚱아리의 리더는 누구인가요. 이 허접한 문장의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이렇게밖에 표현 못하는 자. 소년은 갈길이 한참 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연습의 힘! 그 땀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온몸과 마음, 세포와 근육이 폭발하는 절실한 투혼은 아름다운 궤적의 곡선으로 리더의 자리에서 증명됩니다. 우리는 쏘니와 그의 팀을 응원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4강 이후의 결과를 떠나서 그들은 자신을 넘어 이미 승리했으니까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느 계절에나 그는 뛰고 차며 나는 걷고 씁니다. 쏘니에게 배웁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뜻을 알아채야 합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겨울이 지나가기만을 그저 넋 놓고 기다릴 게 아니라, 겨울에도 우리는 봄의 싹을 틔워야 합니다. 뜨겁게.

나는 내가 응원해야 합니다. 내 하루의 고단한 일상을.


산책길에 오릅니다.

어느새 입춘입니다.


땡큐. 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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