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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Mar 10. 2024

몸으로 밀고 나가는 문장

<문장, 필사적 공부> - Day 6


사람들은 그저 눈으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러나 책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통로가 어찌 눈뿐이겠는가? 나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머나먼 북쪽 변방의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 먼 옛날 가을 귀뚜라미 소리가 책에서 들린다. (P.50)

틈나는 대로 유득공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사는 책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기보다는, 팔딱팔딱 뛰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자리해야 한다고 그는 여기었다. (P.246)

- 안소영, <책만 보는 바보>




* 최근 읽은 책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무엇인가./


쓰는 일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문장이 있다.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P.15


작가는 컴퓨터, 디지털이 아닌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워가며 아날로그로 글을 쓴다. 지우개로 지우고 비워야 맘에 드는 한 문장을 다시 쓸 수 있으니 지우개도 필기도구라 하고, 온몸으로 밀면서 써 나가는 느낌을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 말한다.


 더디고 느리고 힘들지만, 몸이 이끌고 문장이 따라가는 그의 글은 그의 생애를 닮아 정갈하고 간결하며 치열하고 섬세하다. 게다가 꼭꼭 숨겨져 있는 낭만이라니.

역시는 역시요. 대가는 대가이시다.


김훈의 <연필로 쓰기>를 꼼꼼히 읽으며 왼손 필사하고 있다.

육 개월째다. 대가를 따라 해 보려는 따라쟁이의 어설픈 흉내는 표면적이고, 고통스러운데 행복한 마음을 느껴

보려는 소망은 본질적이다.


온몸으로 밀면서 써 나가는 그의 글은 온몸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뚜벅뚜벅. 쿵쿵. 무거운 발걸음으로 와서 버겁고 난감한 질문을 남기거나, 때로는 <자전거 여행>하듯 유유히 나에게로 다가온다. 머문다. 스치듯 머무는 데,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아 있으니 펄떡펄떡 살아있는 문장이란 이런 거구나 싶다.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내 방구석에는 진땀의 강이 흐르고 그 강물에 퐁당 빠져 혼자 어찌할 바 몰라 절절매면서도, 눈물 나는 한 문장은 장강 속에서 발견하는 도도한 행복이다. 왼손은 저리고 글자는 뻐근하지만, 하루 중에 제일 설레는 순간이다.


선생의 형형한 눈빛이 문장 속에 보인다. 눈으로 말하는 듯한 그의 한마디. "스스로의 저항으로 쟁취하라."

앙다물고 단호하며 선명한 그 눈빛을 닮고 싶다.

힘들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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