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변도로에는 전선 지중화 공사, 인도 확장 공사, 노후 수도관 교체 공사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이판사판 난장판이 있었다. 소음과 흙먼지, 그리고 아스팔트 타르의 현기증 나는 검은 아지랑이가 한 달 내내 이어졌다.
회사는 연구소장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우왕좌왕이,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는 업무 인수가,
해외 영업하는 사람더러 정부지원 연구개발 국책 과제 사업을 맡아하라는 중소기업의 암울한 현실이 있었다.
아들, 딸, 조카 생일, 아내 생일 (그래.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지) 가족의 생일이 유월에 몰려있고,
며늘아가 가족과의 상견례도 있었으니 바야흐로 집중된 축복 또한 촘촘하다.
담에 걸려 옴짝달싹 못했던 날들, 그래서 의자에 오래 앉지 못해 중단된 독서. 그런 슬픈 멈춤도 있었고
괜스레 조바심만 내던 2022 상반기에 호흡조절 또는 완급 조절하라는 쉼표 같은 얼떨결의 휴식도 있었다.
다양하고 평범한 일들의 연속. 일상이다.
평소보다 다소 바쁘고 정신없는 유월이었지만, 언제든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있을법한 일상다반사이다.
다행히 큰 사건사고 없이 마감으로 달리는 유월은 안온했다. 이제는, 어떤 완전 행복 번쩍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별일 없는, 별 사고 없는 안온한 날의 빈도가 곧 행복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슬슬 공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다만, 짜증이 조금 났던 일은 동네 주변도로 공사다.
아스팔트를 날마다 수도 없이 덮고 뒤집고 하는 관급공사 그 비효율에 치를 떨며 산달을 앞둔 산모처럼 허리춤을 부여잡고 유월의 많은 날들을 욕과 함께 보냈다. (과묵한 젠틀맨도 화낼 줄 안다. 욕은 물론 혼잣말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신 공무원, 관계자분 계시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 주시라. 극강의 비효율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짜증을 단박에 상쇄시키는 특이한 경험의 날도 있었다.
유월의 어느 날, 오후 반차를 내고 월세방에 짜증과 함께 들어와 더 짜증 나고 허술한 몸뚱이를 침대에 눕힌다. 뭘 할까? (뭘 하기는... 쓰는 자가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쓰기 시작한다.
짜증을 몰아내기 위한 반발심인가? 역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물리가 아니라 진리다. 글은 유쾌로 흐른다.
어라? 글을 쓰다 보니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흐른다. 네 시간이 순삭으로 흘렀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한 건 배고파서 일뿐. 오롯이 몰입과 집중이 시간이다. 실로 오랜만에 무언가에 집중하게 된 어느 유월의 오후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나?' 혼잣말과 동시에 문을 열고 나서니 훅하고 뜨거운 열기가 몰아친다. 32도란다.
대략 십 미터 옆의 도로에는 온갖 건설 중장비가 동원되어 상반기 예산 집행을 위한 필사의 노력들이 다양한 굉음과 분진을 발산하고 있으니 나는 갑자기 딴 세상에 툭 떨어진 듯한 비현실 같은 상황에 당황한다.
나는 그 더위와 그 아수라장 속에서 (작년에 당근에서 구매한 초소형 창문형 에어컨도 안 틀고)
유쾌하게 한 개의 글 꼭지를 브런치에 발행한 것이다. 네 시간... 몰입과 집중이 가져다준 고요라는 선물 속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쓰고 싶은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왜 쓰고 싶은지 참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 고민에 따른 최소한의 마음다짐도 없이 무작정 뛰어든 브런치 플랫폼.
"어느 항구로 향하는지 모른다면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 철학자 루카우스 세네카의 말처럼 나의 글은 무거웠고 방향성 없이 표류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그런 비슷한 모습으로 몇 달이 흐르면서 살펴본 것은 글 조회수다.
글 조회수로 글의 품질을 평가할 일은 아니다만, 객관적 지표로 삼아보려는 심리는 대부분 작가의 일반적인 마음이겠다. 내 글들의 조회수는 통계 그래프의 X축에 껌딱지처럼 붙어있고, 이러다 X축과 데드크로스가 일어나 저 깊은 지하로 마구마구 내려갈 수도 있겠구나. 하던 차에.
유월, 급격한 상승곡선이 아찔한 각도로 치솟는다. 어안이 벙벙하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변화에 설레거나 흥분해서 동네 포차 골든벨을 울리진 않는다. 그렇게 정신머리 없는 인간은 아니다.
내 글쓰기에 변화가 온건 글쓰기 모임 (라라크루)에 멱살 잡혀 쓴 글의 수가 늘었다는 점과 나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무거움 털고 가볍게, 에라 모르겠다 정신으로 마인드셋을 바꾼 것뿐. 그것뿐이다.
오묘하여라. 역시 힘 빼기, 덜기, 내려놓기의 법칙이 글쓰기에도?
특별히 일 년 중 유월이 글쓰기에 적합한 달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느 달이, 어느 계절이 최적이다라는 실증적 데이터도 없다.
물론 글쓰기에 적합한 공간과 날씨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으나,
역시 답은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일단 많이 써보고 / 계속 써보고 / 또 쓰는 지구력에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집중과 몰두를 장착하여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하나마나한 당연한 얘기를 나는 이제서야 이번 유월에 체감하였다. (세상둔하다.)
작가 지망생이던 소년은 어느새 장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꿈을 꾸는 자.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청춘이겠다.
이 시점에 당연히 따라와야할 건배사가 하나 있다.
청바지! 청춘은 바로 지금! (아이고, 언제적 건배사인가.)
살짝 비틀어 본다.
청 : 청춘의 글쓰기는
바 : 바로
지 : 지금부터!
(아이고, 창의력의 한계여...)
이렇게 유월이 간다. 올 유월의 이 바람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나의 항구는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