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가? 벌서 겨울인가? 난 누구, 여긴 어디? 하모니카 소리 같은데? 부스스 일어난 김허당은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다섯 시다. 여긴 방구석이다. 일요일에 평소 같으면 점심 먹고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즐기는데 이번 일요일 오후 대부분을 낮잠으로 메워버렸다. 최근 잔병치레에 좀 피곤했나 보다.
왠지 일요일에게 미안해진 김허당은 주섬주섬 산책 룩으로 갈아입는다. 산책이라도 해야 그 미안함이 조금 덜어질까라는 마음에서다. 산책 룩이라 해봐야 반바지에 붉은 악마 티셔츠다. 동작은 미적미적 슬로비디오 모션이다.
그러다 갑자기 서두른다. 징글벨이다.
누구인가? 누가 이 한 여름에 징글벨이란 말인가?
궁예인지 왕건인지를 흉내내는 4달러 아저씨를 흉내내면서 대문을 나서보니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대각선 방향 2층 집 앞에서 나는 소리다. 초등 어린이 자매와 젊은 부부가 사는 집이다. 개발은 거의 없는 구도심 동네다. 거주인의 90% 이상이 어르신들이다 보니 이 집 아이들이 가끔 롤러스케이트나 씽씽이를 타고 골목을 누비는 장면은 적막한 동네에 충분한 활기를 준다.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는 게임 체인저이자 동네의 귀염둥이 아이콘이다.
자매의 언니는 아롱이, 동생은 다롱이라고 하자. 말을 걸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마침 아이들이 문 앞에 있다. 언니가 부르고 있다. 조금씩 틀리곤 하지만 계속 연습한다. 하모니카가 아니고 알록달록한 피아노 건반으로 된 입으로부는 아코디언? 이 사물을 정확이 뭐라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김허당 : 아롱아, 너 이 노래 징글벨이지. 미미미 미미미 미솔도레미.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아롱이 : 네 맞아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떻게 이 노래 계명을 아세요? 그럼 이 노래도 아세요?
(나란히 나란히 를 연주한다.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밥상 위에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김허당 : 미레도 미레솔 미레도~ 도도도레 미미미도 레레미 레레미 도도도
다롱이 : (다롱이는 롤러스케이트를 잘 타서 늘 헬멧을 쓰고 다닌다.) 할아버지 음악 선생님 이세요?
김허당 : 음악 선생님은 아니고 그냥 박사님으로 알고 있어라! 척척박사! 음하하 ~ 재밌게 놀아라 ~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이 노래의 계명을 왜 여태 기억하고 있는 거지? 나도 아마 수십 년 전 국민학생 시절 어느 겨울에 학교 음악실에서 노래를 부르며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춰 친구들과 신나게 불렀겠지? 노래는 그렇다 쳐도 계이름을 어떻게 여태 기억하고 있는지는 점점 궁금해진다. 공원에서의 산책길 내내 생각해보니 그런 노래들 몇몇도 추가로 떠오른다.
솔 라솔미 레 미레도 미솔 도라솔
미 솔도솔 라솔 미도 레미파레도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Access 가 거의 없는 Data (서버 스토리지 업계에선 이를 Tier 3 Data라고 부른다. 자주 호출되는 Data는 Tier 1)이지만, 뇌 어느 한구석 폴더에 수십 년째 먼지 폴폴 저장되어 있다가 무의식 담당 뇌 CPU의 요청에 의해 지체 없이 바로 입으로 출력되는 기가 막힌 기능이다. 참으로 신묘한 뇌의 기능이다.
노래 계명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중략)...... 스스로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완전 자동으로 술술 출력된다. 국민교육헌장이다.
오호라. 이거 재미지다.
또 뭐가 있을까 생각을 쭉 이어가다 보니 학창 시절을 건너 띠고 바로 사회인시절로 넘어간다.
이번엔 말, 언어다.
사회에 나와 첫 입사한 회사. 신입사원 시절, 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 이 OO 야, 넌 머리에 도대체 뭐가 들었어? 머리에 스치로폴만 꽉 차 있는 거냐? 일을 이따위로..."
(스치로폼이 바른 표기이나 내가들은 그대로 적다 보니 스치로폴이다.)
이 말과 동시에 날아오는 건 재떨이와 결재판이다. 그 말도 장면도 슬로모션으로 또렷이 재현된다.
어떤 일을 내가 잘못한 건지 무슨 상황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말은 대사 하나하나 그대로 생생히 기억나고 다시 가슴에 와서 박힌다. 맞다. 당시의 나는 마상 (마음의 상처)을 입은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재미지던 기억 소환 놀이가 갑자기 나락으로 우울해진다.
옛 시절 우리의 대부분 상사들이 그러했지만, 나의 부장님은 엄격하고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셨고, 한치의 오차도 용서되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날고 긴다던 천재 프로그래머 선배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부장님의 불호령 또는 언어폭력에 시달렸고, 우리는 날마다 퇴근 후면 삼삼오오 모여 신세한탄의 술잔을 기울였다. "헤이, 스치로폴킴~. 끝나면 오돌뼈 오케이?" 이런 식으로 그날의 술자리는 화장실이나 복도에서 비밀리에 결사된다. 물론 오돌뼈는 거의 구색용이다. 그 술자리의 잘근잘근 씹어 댈 메인 안주는 언제나 부장님이었으니까. 남은 오돌뼈는 포장해서 집에 싸간다. 집에서도 오도독 오도독 씹어야 하니까.
아마도 김허당이 과묵해 진건, 이분의 영향도 꽤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때의 충격은 상상외로 컸었나 보다. 이 말이 아직도 똑똑히 기억나니 말이다.
언어폭력을 떠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절이 또 있다. 군대다.
여기서는 언어폭력도 폭력이지만 실제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과 공간이다. 고만하자.
징글벨로 즐겁고 시원했던 일요일 오후를 더 이상 망치지 말자. 즐거운 일만 기억해도 충분한 일요일이다.
오늘은 징글벨과 나란히의 날이다.
타인에 대해서
본인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습관화된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상대방은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래서 늘 나의 말과 언어와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문제가 없는지 주변에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한말이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어 무의식에 꽂히면 그것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문득 어느 날 소환되어 다시 상처가 된다. 슬픔은 잊을 수가 있지만 상처는 지울 수가 없다는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충고나 지적을 할 때에도 그일 자체로 제한하여 충분히 선별된 언어로 신중히 전해져야 한다는생각이다.
말이 독이 되고 가시가 되거나 칼이 되는 일.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물론, 후배나 사회초년생들을 강하게 키우고 철저한 일처리를 위한 나름의 방법이라고 핑계를 댈 순 있다. 그러나, 이젠 그 이유를 핑계로 언어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다. 다른 체계적이고 올바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없었는가 곰곰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귀를 열어둔다.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열어두면 좋은 점이 또 있다.
이렇게 한여름에도 징글벨을 들을 수 있는 행운도 간혹 찾아오니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아롱이다롱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은걸 잊고 있었다. 살짝 울적하다.
나에게 할아버지라니... 세상에나 마상에나...
멜로디와 계이름에 정신을 쏟느라 그 자리에서 교정해주는 걸 깜박 잊었다.
'얘들아, 너희들이 잘 못 본 거 같은데 나는 할아버지 아니고 아저씨란다. 그렇다고 너무 자세히 보면 안 되고 얼핏 봐야 해. 얼핏 본다는 게 무슨 말인지는 알지?'
다시 가서 정정 보도해 달라고 요청할까?
아서라. 인간아.
아이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곧 아물고 용서된다. 이제 곧 아들 결혼식이니 공식적으로 할아버지가 될 날도 사실 그리 멀지 않았을 터.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럼 그래야지. 쿨하게 인정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