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간절기

팔월과 구월의 경계에서

by 김호섭

처서가 지난지도 열흘이 넘어간다. 어제 일요일에는 하염없이 하루 종일 비가 왔었고 오늘도 그 비는 이어진다. 태풍도 온단다.


조석으로 공기의 밀도가 다르다. 공기 입자의 맛과 향도 다르다. 쌉싸름 달콤하며 신선한 민트향이다.

이제 사계절 공기마다의 차이점, 특이점 정도는 가뿐히 분간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인디언 이냐?)

하늘은 높아졌고 바람은 서늘하며 햇살의 맹열은 어느새 다정하다.

덩달아 공원도 무척이나 붐비기 시작한다.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겨울의 추위를 대비하여 미리미리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의 V자 행렬이 공원 하늘을 가득 메운다. 스몰 v자 행렬은 핵가족이다.

1인 가구.나 홀로 떠나는 아이도 있다. 사뭇 위풍당당하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행렬로 너무 붐벼서 하늘의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날다 떨어지는 새들이 있을 리는... 없다. 하늘의 교통체증이란 말은 새들이 많음을 표현한 과장법이다.

그러고 보니 V자 행렬도 과장법이다. 실제는 점선 V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간단다. 실제로 물지는 않는다. 그렇게 보인다의 과장법이다.

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가는 진기 명기한 장관을 실제로 보게 되면 좋으련만.

그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구나.




서두르자.

오늘은 송별식과 환영식이 동시에 열리는 대환장 파티의 날이다.

떠나는 이는 2022 여름이고 오는 이는 2022 가을이다.


모임의 참석자는 허당이 주관하고, 여름내 아팠던 아야와 분위기 메이커 헤롱. 존재감 없던 과묵,

그리고 새 친구 생생이 초대되었다. 절대 혼자가 아니다.

시간은 저녁 7시, 장소는 방구석이다. 방구석이 빈틈없이 와글와글하다.

이렇게라도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 오고 가는 계절의 손바뀜을 굳이 선언하고 느끼고 한 계절을 매듭짓고 결산하고, 시절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오붓한 시간의 의식을 가지려 함은 단순히 이슬 한잔 하고픈 마음에 냉큼 덜컹 한잔하는 것과는 차원이 완전다르다. 전혀 다르다.

(하여간, 별의별 핑계의 끝판왕이다.)


식순도 짜여있다. 제법 알차다. 올여름 MVP 선정과 시상도 있었다. 올여름 MVP는 당연히 아야다.

고생 많았다. 아야야.

파티는 장엄하게 시작하여 다 함께 춤을 추며 여흥으로 무르익는다.




파티는 원활히 끝나고 이제 모두 함께 떠나는 여행의 시간이다.

고급 뷔페 전문 식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방구석은 이제 민간 여객항공기 조종실의 역할로 넘어간다.

파일럿은 김 허당. 6평 정도 되는 이 한 칸짜리 방구석은 식당에서 술집으로, 도서관, 글쓰기 작업실로 또는

에어로빅댄스 연습실로, 비행기 조종실로 순식간에 변환할 수 있다. 오로지 허당 맘대로다.

이른바, 방구석 조종실이다.

다양한 트랜스포메이션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는 역시 김 허당. 혼자서 다해먹는다.

베테랑 파일럿 허당은 기수를 북서쪽으로 튼다. 유럽 쪽이다.



지중해를 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중해의 햇살이 보고 싶었다.

수많은 책이나 글에서, 책이나 글보다 더 수많은 작가들이 그리도 찬양하고 선망하는 지중해의 오렌지빛 햇살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햇살이길래 그 동네 사람들은 한없이 낙천적이며 한가로이 여유롭고, 그 동네 작가들은 또는 그 동네를 다녀온 작가들은 어찌 그리 환상적인 문장을 그 햇살 속에서 길어 올린단 말인가.

부러운 게 별로 없던 허당도 지중해 햇살만큼은 가슴속 품은 로망으로 선망해왔다.


사실 가볼 기회는 많았다, 젊었던 시절.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다니며 지구촌을 옆동네 마실 다니 듯 다녔지만 대부분 회사 출장이나 사업차 다니던 터라, 어디 멋진 풍경구경이나 관광이나 슬슬 다니는 건 언감생심.

비즈니스맨은 그저 현지 사무실-고객사-호텔-비행기-현지 사무실-고객사-호텔-비행기 코스의 무한루프 셔틀런뿐. 이런 일정에 마음의 여유마저 없으니 근사한 장관. 현지 관광은 그저 그림의 떡, 남의 SNS 사진이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런 말이겠지.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라!' 그때 구경도 좀 많이 다녔어야 했는데...


얼마나 멋진 햇살이었으면 '황금'타이틀까지 붙여, '지중해의 황금 햇살' 인가.

그 황금의 은혜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받아 보고 싶다만, 허당은 곤히 잠든 친구들을 바라보고는 다시 기수를 대한민국 방구석으로 유턴한다.


어차피 가봐야 상상 속의 지중해, 상상 속의 햇살일 뿐.

얘들아.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햇살이 있단다.

또렷한 햇살이 있단다.

동네 공원에서 언제나 친구처럼 마주하는 햇살.

방구석 서향, 남향 두 개의 창으로 스며드는, 모자람 없이 넉넉하고 다정한 햇살.

실제로 맞이하는 생생한 햇살. 그 새벽과 오후.

가을의 햇살이 있으니

곧 가을이려니

이제 곧 우리에게도 황금 햇살의 성수기다.

지중해만 황금 햇살이냐? 그럴 리 없다.

시선이, 관찰이 또렷하면 동네 햇살도 오렌지 빛 황금이다.




계절이 오고 가듯이 내 마음도 오고 가겠지.

여름에 온 마음이 다시 희망이라면 가을에 올 마음은 무엇일까?

혹여나 이런저런 마음의 아픈 구석, 개운치 않은 찌꺼기가 남아있다면 버리고 청소하고 먼저 비워야 할 일이다.

몸과 마음이 어찌 따로 이겠는가? 아팠던 몸만큼 마음도 많이 힘들었겠지. 드러내지 않고 있던 건 어쩌면 마음의 몸살아니었을까?

계절의 간절기에 겪는 몸살처럼. 감기처럼 말이다.


쓰는 일.

안해오던 일을 하려니 때론 스스로가 당황스럽고 산란스러운 건, 어쩌면 당연한 마음의 파동과 변화된 에너지의 진폭, 그리고 낯선 나와의 만남이겠다.

줄창 아프다던 아야만 탓할 일이 아니다. 찬찬히 들여다보자. 이 생경한 마음을.

쓸어 담아 버릴 건 버리고 비울 건 비우자.

새로운 마음을 들여야 하니까.

새로운 햇살을 받아야 하니까.


방구석은 다시 활기를 띤다. 대 청소의 날이다.

이 방구석의 새로운 트랜스포메이션이 기다려진다.


가을아. 가을 햇살아.

어서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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