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선가, 대가 김훈 작가님이 글 쓰는 작가의 일상을 표현한 말이다. 컴퓨터가 아닌 원고지에 일일이 연필로 쓰며 오랜 기간 고집해 온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이라 하신다. 쓰고 지우기를 무한 반복하면서 과정의 고통과 쓰는 이의 온갖 희로애락을 몸으로 밀고 끌고 챙겨서 가는
그런 느낌이 좋다는 작가의 깊은 감성을 나는 하염없이 존경한다. '연필로 쓴다'라는 평범한 표현을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간다'라고 쓰는 순간, 문장은 단순하고 평범한 의미를 넘어 새로운 의미가 붙고 상상이 촉발되고 생명력이 부여된다. 이런 문장은 도대체 어떤 사유와 통찰 속에서 나오는 것일까? 역시는 역시다. 대작가가 된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
컴퓨터에 짧은 글 그저 한두 개 쓰기에도 버거워서 가뜩이나 부족한 머리카락만 쥐어뜯고, 삼십 분만 앉아 있어도 좀이 쑤셔 참으로 부산스러운 나와는 차원이 다른 거장의 내공 또는 품격이겠다. 분명, 평생 작가로서 예술가로서의 그 끈기와 성실과 기백은 감히 범인이 행할 수 없는 “결” 이기도 하겠다.
생각이 떠오른 김에, 먼지 켜켜이 쌓인 책장을 뒤져보니 김훈 작가의 그 책 제목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다. (연필로) 글 쓰는 일이 그저 언뜻 보기에 멋스럽고 한가로운 로망으로서의 사치가 아니라 (몸으로) 글 쓰는 일이 엄연한 생활인으로서의 치열함과 고단함을 의미하기에 대작가 또한 우리처럼 고단한 직업인이기도하구나라는 마음에 한편으로는 친근하고 또한 정겹다.
나에게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술가가 또 한 명 있다. 몇 년 전부터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딸 예은이다.
(작가명 : 어니니 https://link.inpock.co.kr/oooonin) 한걸음 한걸음 초보적 작가 활동을 꾸준히 하더니 어느 새인가 이 분야의 인플루엔서가 되어있다. 취미로 하는가 싶었는데, 급기야 해외 Artist 들과의 협업도 하고 파생되는 다양한 시도들이 뒤를 잇더니 SNS 팔로워가 어느새 2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수십만, 수백만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Creator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2만 명이라는 수치적 도달은, 딸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다. 구독자 35명의 왕왕 초보 브런치 작가인 나에게는 상상초월의 숫자이다. 어마 무시하다.
딸에게도 사랑과 존경을 보내야 마땅하다.
좋아라 하는 일에 초집중, 몰두의 경지에 빠져있는 사람의 모습은 정녕 예쁘고 멋지고 매력충만이다. (딸아. 너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거장의 아우라와 감히 견줄 수는 없겠으나, 오랜 시간 공들이고 정성을 기울여 준비하고 전진하는 아이의 모습 또한 나름의 세계와 기준 속에서 몸으로 밀고 가는 예술가의 모습이겠다. 민간인 아빠는 그저 안쓰럽기도하고 대견하고 또한 흐뭇한 마음속이다.
얼마 전부터, 아빠의 브런치 링크가 딸의 다양한 플랫폼에 걸렸다. <브런치 작가가 된 우리 아빠>라는 링크 제목으로... 아빠 : " (당황함을 금치 못하며) 딸아. 아니.. 아빠는 작가의 등용문인 전통과 역사의 신춘문예 또는 각종 문단
에 공식 데뷔한 정식 작가도 아니고 그저 브런치라는 데에 글하나 올렸더니 바로 통과되길래 신청자
누구나 네이버 회원 가입하듯 하면 되는 그런 플랫폼인 줄 알았거든. 브런치 작가가 뭐라고."
딸 : "아빠, 요즘 브런치 작가 도전하는 사람 꽤 많고 심사 통과되는 방법 가르치는 학원, 세미나 그런 것도
엄청 많이 생길 정도래요~" 아빠 : "이게 무슨 일이냐... 도대체. 아무튼, 그래서, 설마, 자랑스러운 마음에?..." (아뿔싸. 2만 명 중의 누군가는 얼떨결에 들어와 나의 글을 볼 것 아닌가. 얼굴이 뜨끈뜨끈하다.)
별 볼 일 없는 아빠의 작품세계를 떡허니 대문에 걸어둔 패기. 역시 내 딸이다. 그 마음의 바탕은 아빠에 대한 딸의 사랑이라는 건 아빠도 잘 알고 있으니 링크를 내려라 마라 유난을 떨진 않는다. 그저 글 수준에 대한 부끄러움은 오로지 아빠 몫일뿐.
그저 열심히 부지런히 좋은 글을 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누가 억지로 멱살 잡고 글 쓰기 하라고 시킨 일도 아닌데, 자기위축 또는 부담을 자꾸 확장시키는 이유는 뭘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겠다. 조급한 마음도 한몫하고... 그러니 자꾸만 자책과 반성이 넘쳐나는 요즘의 일상이다. '인간아. 초보운전자가 어찌 카레이서 같은 현란하고 엄청난 질주를 꿈꾸는가 말이다. 좋아하는 일 오래 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하는 법. 어처구니없는 욕심이 웬 말인가'
애면글면하면서 놓쳐버린 것은 '긴 호흡' 이겠다.
정신줄을 바짝 당겨본다. 나는 어떤 끈기와 근성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밀고 나갈 것인가?
얼마 전부터 한 가지 변화를 주고, 기대하는 바가 있다. 바로 라라크루 글쓰기 모임이다. 동료. 프렌즈. 크루 들이다.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가볍게 써보는 글벗모임이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는 냉정한 판단에 따른 절묘한 신의 한 수다.
마침 이런 글쓰기 모임이 시작된 것은 어쩌면 나에겐 뚜벅뚜벅 걸어온 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수호신'께서 안쓰러운 내 처지를 보시고 아이고 인간아하며 내려주신 행운, 그것은 '배움과 공감'이겠다. 오호라. 이번 글쓰기 모임 리더 이름이 '수호' 작가님이다.
"글쓰기 모임이 모두 끝나고 결론적으로 무엇이 남을까요? 출간이나 공저나 그런 계획이 궁금합니다."
회원의 물음에
"사람이 남을 것입니다. 출간이나 공저 계획은 아직 고민 중입니다." 수호 작가는 답한다.
사람이 남을거라는 스쳐가는 말속에 작가님의 탄탄한 내공이 보인다. 멋지고 잘생겼다.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글 벗님들과 호흡하며, 함께하는 어깨동무는 벌써 효과 만점이다. 게으름이 스머프인 내가 2주 만에 벌써 4개의 글을 쓰고 브런치에 발행했으니 말이다. '먼길을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고 누군가 얘기하지 않았던가.
긴 호흡으로 가자. 좋아하는 일을 몸과 마음으로 밀고 가면서 지치지 말고 그 길이, 그 여정이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소망해 본다. 글 벗님들도, 딸도, 아빠도. 모두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