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섭 Aug 25. 2024

열두 척의 행복


바닷가에 사는 동생이 본가에 왔다. 손 크고 마음 큰 동생은 엄니와 나를 위해 일용할 양식을 한가득 싣고 왔다. K1A1 탱크만 한 스티로폼 박스에 온갖 산해와 진미가 가득하다. 주섬주섬 삼치 한 마리를 싸준다.
"오빠. 이거 큰 놈이니까 세등분해서 소분해서 먹고, 프라이팬에 식용유 돌돌 뿌려 약불에 구우면 돼, 간장에 식초와 물 넣고 살짝 찍어 드소."

 "응? 그래. 알았어. 고맙다. 동생아."라고 대답은 했지만 요알못인 나는 본가를 나서며 다시 묻는다. "간장에 뭐라 했지?" "식초와 물 조금!"




방구석에 식초는 없으니 마트에 들러 오뚜기 사과 식초 소짜를 하나 골라 사 온다. '사과로 식초 만드나?' 덥고 텁텁한  날씨만큼이나 참으로 물색없고 답답한 요알못이다.

방구석에서 삼치를 펼쳐본다. 우와. 삼치인가 고래인가. 사이즈가 놀랍도다. 이불인가? 덥고 자도 되겠다. 동인천 삼치골목의 삼치는 이에 비하면 아이쿠 깨갱이다. 세 등분이 웬 말이냐. 십이 등분이 마땅하다.

어느 주말에 어느 바닷가에서 태어난 삼치가 제멋대로 자유롭게 크다가 생채기 나고 흉터 나고 그러다가 나에게로 왔다. 반갑다. 삼치야. 덕분에, 당분간 삼치골목에는 안 가도 되겠다. (미안해요, 삼치집 사장님. 사정이 있어서...)

삼치와 사과와 식초. 삼사초!  삼사 십이. 분명, 열두 척의 행복이다. 그러니 행복은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 내 마음의 약불에도 돌돌 정성 담아 살짝 구워  만드는 것이다. 상처나 흉터는 식초와 물 조금으로 치유한다. 호라. 나는 새콤달콤 식초같은 글을 쓰고 싶은게로구나.

노릇하게 구워질 열이틀을 미리 상상해 보니 세로토닌이 마구마구 솟아오른다. 콸콸콸.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어렵사리 만나는 쨍하거나 굉장한 한 번의 강도보다는
소박하거나 잔잔한 여러 번의 빈도다.

그러니 어느 선각자의 말이 맞다.
내 안에 있다.
우리네 일상에 있다.


#인천 #송림동 #본가 #송월동 #방구석 #고래삼치 #고맙다 #동생아 #걷기 #쓰기 #그리기 #그리고 #행복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히 즐기는 윷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