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칠성의 전설

by 김호섭



​"북두칠성이 여전히 선명하네요. 근육도 탄탄하시고, 우리 아빠 아직 짱짱하십니다." 내 등짝을 벅벅 밀다 말고 아들이 한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내 등판에 점 일곱 개가 있는데, 그 점들을 가상의 선으로 연결하고 자세히 보면 영락없는 국자 모양이라며 아들은 그걸 북두칠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문신도 아니고 CG도 아니니 그야말로 천연 자연산 별자리 점이다.

물론 아빠가 전설의 칠성파 두목이나 무협지에 나오는 절대신공 칠성공자는 아니지만, 내 등에 별이 일곱 개 떠 있다는 걸 아는 아들은 늘 신기해하면서도 뿌듯해하는 눈치다. 별거 아닌 점 몇 개에도 아들과 아빠는 이렇게 웃고 연결된다.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지켜본 사람은 아들이 유일하다. 그 유일성은 생물학적 해석이나 철학적 의미로 설명하기 힘든 일상의 '당연'이다. 요즘이야 모르겠지만, 새해맞이 목욕 행사는 오래도록 내려오는 우리네 대중전통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맨살 맨등의 역사에 익숙하다는 사실은, 특이점이라든가 어떤 개념으로 가두어 설명하기 어려운 대한민국 부자간의 끈끈한 점이요 선명한 선이다.




새해벽두에 아들과 찜질방을 다녀왔다. 아들과 동네 목욕탕을 간지가 언제였던가. 코로나 사태로 몇 년간 못 갔고 의료대란 사태로 또 못 갔다. 간호사인 아들은 의료 현장을 지켜야 했고 나는 재기의 긴 터널 속을 걷고 있다 보니 올해의 부자 목욕은 어언 십 년만의 행사가 된 듯하다. 아들이나 아빠나 각자의 상황과 역할에 열심이다가 오랜만에 목욕탕에 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반증하는 사건이리라 생각해 보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겠다.

소금 사우나도 하고 밥도 먹고 이런저런 밀린 얘기 나누다가 아들도 나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 물이 끓는 순간의 온도를 백도라 하고, 광물 중에 최고로 쳐주는 금이나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순도로 평가한다면 잠에는 '꿀도'가 있다. 가장 순도 높은 순간의 잠의 온도. 달디달고 달디단 꿀잠. 삶의 긴장과 고단을 몸이 스스로 풀어헤치며 뜨근한 바닥에 스르르 녹여 내리는 순간, 무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시간. 그런 때의 순도, 온도말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단잠, 꿀잠을 잤다. 나란히 누우면 세상 근심 걱정 잠시 잊게 되는 든든한 사이, 굳이 말로 표현 안 해도 서로의 의지가 되어 주는 사이. 부자간의 정이란 이렇게 순도 높은 잠을 뭉근하게 선사한다.

나보다 더 꿀잠을 자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의 나이가 된 아들의 모습에 아가 때의 영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뽈뽈거리며 쏜살같이 기어 다니다가 곤하게 잠들던 귀여운 녀석.

생활인, 의료인의 고단함도 묻어있으니 애잔하기도 하다.

떡 벌어진 어깨, 튼실한 팔다리. 그래. 이제 곧 너도 아빠가 되겠구나. 나도 머지않아, 무늬만 아닌 진정한 할아버지가 되겠구나. 혼잣말도 해본다. 삼대가 줄줄이 앉아 등을 밀고, 북두칠성의 전설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나는 그저 흐뭇하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연일 화제다. 산업현장에 투입되어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할 날이 멀지 않았고, 혁명에 가까운 삶의 격변이 인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는 느낌은 굳이 일론 머스크의 말을 빌지 않아도 직감한다. 놀랍고 두려운 느낌도 나고, 인류만이 할 수 있는 대체불가한 일은 무엇인가 생각도 깊어진다. 만일, 등짝 밀어주는 휴머노이드가 생긴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런 로봇이 필요한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정중히 사양할 것이다. 부자간의 따스한 손길과 북두칠성의 전설로 새해마다 나누는 기쁨을 빼앗기고 싶지 않으니까.




몸이나 얼굴이나 구석구석 들여다보자. 자기 몸 전체를 자기가 둘러볼 수 없으니 찜질방 가서 아들이나 딸, 배우자에게 봐달라 하자.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에나 점은 있을 터, 점과 점을 이리저리 선 그으면 그게 바로 별자리다. 그러니 내 안에 별 있고 너 안에 나있다. 우리가 별이다. 그 별들끼리 공들여 이으면 우리야말로 살아있는 전설. 대체 불가한 단독자로서 함께 빛나는 지구별자리가 아니겠는가.

해가 바뀐 지 보름이나 지났건만 나는 이제야 새해를 출발한다. 새해 첫 글을 이제야 올린다.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이지만 개운한 출발은 가볍다.

올해의 길 위에 오른다. 천천히 걷는다.
'올해에는 별처럼 빛나는 글도 좀 몇 줄 써보자'
'깜박 잊은 바나나 우유를 내년 목욕 때는 잊지 말아야지 '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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