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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자 드라이버는 선택하면 안 되는 걸까

내가 백돌이 시절부터 상급자 드라이버를 고집한 이유

by 골프치는 한의사

이전 머슬백 아이언에 대한 글이 많은 관심을 얻었다. 요즘은 세계적인 PGA 프로 골퍼도 머슬백보다 캐비티백을 선택하는 시대다. 여자 프로 골퍼는 대부분 캐비티백을 사용하고, 남자 프로 골퍼도 롱아이언은 캐비티백을 사용하는 콤보 아이언 구성을 선호한다. 캐비티백의 선택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아이언 제조 기술의 발달로 캐비티백으로도 충분히 그린에 공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백스핀이 좋아졌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프로라고 해서 굳이 난도가 있는 머슬백 아이언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프로라면 머슬백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브랜드들은 정통 블레이드 아이언을 내놓지 않고, 프로들도 머슬백 타입의 블레이드 아이언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블레이드 형태를 갖춘 캐비티백이나 중공 구조 아이언이 인기가 많다. 형태는 날렵하면서 난이도는 낮춘 디자인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언은 대부분 헤드의 크기와 솔의 넓이, 그리고 로프트를 기준으로 중상급자와 초급자용 아이언을 구분하여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초급자와 중상급자 아이언의 퍼포먼스 차이가 비교적 현격하게 나는 편이다. 헤드 크기가 작아지면 어드레스를 설 때부터 부담스럽다. 솔이 얇고 날카로우면 잘 빠져나가지 못하고 러프에 박힐까 봐 두렵다. 중상급자의 7번 아이언 로프트는 34도, 최근 초급자용 7번 아이언 로프트는 28.5도도 출시된다. 로프트만 봐도 두 클럽 차이가 나는 셈이다. 초급자가 중상급자 아이언을 선택하면 당장 로프트 때문에 7번 아이언 비거리가 두 클럽 줄어들게 된다. 거기에 샤프트까지 합쳐지면 그야말로 넘사벽의 난도가 형성된다. 그래서 아이언은 선택하기가 비교적 쉽다. 난이도가 있는 아이언은 충분한 연습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이버는 어떨까? 드라이버의 크기는 대부분 460cc, 형태는 딥페이스와 샬로우페이스가 나누어지지만 큰 난이도의 차이는 없다. 로프트도 9도와 10.5도가 전부다. 중상급자용과 초급자용의 차이가 크지 않은 셈이다. 보통 메이저 브랜드에서 드라이버를 출시할 때는 적게는 두 가지에서 많으면 네 가지까지 헤드의 형태를 다르게 하여 출시되는데, 일반 모델과 슬라이스 방지 모델, 그리고 중상급자용 드라이버가 그것이다. 여성용 드라이버는 보통 한 가지만 출시된다.


90%의 골퍼가 일반 드라이버 모델을 선택한다. 중상급자도 드라이버 모델 선택은 굳이 중상급자용 모델을 선택하지 않는다. 드라이버는 헤드보다 샤프트가 훨씬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축에 속한다. 드라이버 샤프트만 20여 종을 사용해 보았고 지금도 10종 이상을 가지고 있다. 마음에 드는 헤드를 찾으면 슬리브를 바꾸어 여러 샤프트를 조합해 사용해보곤 한다. 신상 드라이버보다 신상 샤프트에 관심이 더 많기도 하다. 아직도 한의원의 창고에는 최근에 출시된 샤프트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나는 드라이버 때문에 7년이 넘게 고생한 골퍼 중 한 명이다. 드라이버 슬라이스가 잡히지 않아 2년 동안은 백에서 드라이버를 빼고 라운드를 다닌 적도 있다. 5번 우드와 3번 유틸 티샷에 익숙해진 것이 다행일까 불행일까. 드라이버를 잡은 지금도 여전히 가장 자신 없는 클럽은 드라이버이고, 자신 있는 클럽은 유틸리티와 퍼터다. 드라이버를 잡지 못하니 유틸로 티샷과 세컨드샷을 모두 해야 할 때가 많았고, 덕분에 다양한 로프트의 유틸리티를 사용하면서 유틸리티샷에 익숙해졌다. 그린에서 멀수록 불안하고, 그린에 가까워질수록 자신감이 넘치는 골퍼다. 파 5가 싫고, 파3가 좋다. 드라이버 슬라이스를 잡은 지도 채 2년이 되지 않을 정도다.


메이저 브랜드에서 2025년 신상 드라이버를 출시했고, 고심 끝에 3년 만에 드라이버를 바꾸기로 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드라이버가 내 성향과 너무 맞지 않았던 탓이다. 신상 드라이버를 고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이 바로 브랜드인데, 내가 어떤 브랜드의 드라이버를 썼을 때 가장 편하게 티샷을 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답은 하나였다. 내가 드라이버를 고민하지 않았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캘러웨이의 매버릭 서브제로 드라이버를 사용했을 때였다. 그 드라이버는 아직 가지고 있다. 신상 드라이버를 사기로 결정한 후 꺼내어 휘둘러봤다. 아, 이 느낌이구나. 이 드라이버를 계속 썼으면 드라이버 고민을 5년 전에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식이 따라오는 게 너무 늦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매버릭 서브제로 이후 계속 중상급자 드라이버만 고집해 왔다. 핑의 LST 모델, 그리고 테일러메이드의 스텔스 플러스 드라이버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초보적인 드라이버 슬라이스로 7년을 고생한 골퍼가 중상급자 드라이버를 고집하다니. 정작 아이언은 초급자용에서 중상급자용으로 무리 없이 단계적으로 잘 선택해 왔는데, 왜 드라이버만 중상급자용을 고집했을까. 그리고 실제로 왜 중상급자용 드라이버가 초급자용의 그것에 비해 나에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중상급자 드라이버의 형태적 특징은 보통 일반 모델에 비해 드라이버 헤드의 체적이 10cc 작고, 헤드의 앞쪽, 즉 페이스 부분에 무게추가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일반 모델은 헤드 뒤쪽에만 무게추가 위치해 있는데, 중상급자 모델만 페이스 쪽에 무게추가 위치해 있는 것이다. 매버릭 서브제로 모델은 심지어 페이스 쪽 무게추가 더 무겁게 세팅되어 있었다. 물론 앞뒤의 무게추 위치를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모델은 페이스 쪽에 무게추를 달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 쪽에 무게추를 더 무겁게 해서 사용한다.


페이스 쪽에 무게추가 위치하면 우선 탄도가 낮아지게 된다. 헤드 뒤쪽에 무게추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헤드가 뒤쪽으로 기울면서 어퍼 블로우를 만들어내는데 유리해진다. 반대로 페이스 쪽에 무게추가 위치하면 페이스 쪽이 앞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발사각이 낮아지면서 낮은 탄도가 형성된다. 그래서 대부분 중상급자용 드라이버는 탄도가 너무 높아서 비거리 손해를 보는 중상급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프로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나는 드라이버를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탄도를 높이 띄우지도 못하는데 중상급자용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중상급자용 드라이버를 휘둘러봐야 한다. 무게추가 앞쪽에 위치하면, 헤드 무게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무게추가 앞쪽에 위치할수록 헤드가 쉽게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무게추가 앞쪽에 있기 때문에 헤드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나처럼 상체가 앞으로 덤비는 골퍼가 빠져나가는 헤드 때문에 카운터 밸런스를 잡으려고 앞으로 덤비지 않고 뒤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일반 모델은 헤드 뒤쪽이 무겁기 때문에 체중 이동을 위해 상대적으로 타깃 쪽으로 몸이 나가야 하는 스윙을 하게 된다. 체중 이동 없이 뒤로 누우면서 스윙하는 골퍼를 위한 모델인 것이다. 슬라이스가 나는 것은 스윙 궤도로 인한 것이지 체중 이동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덤빈다고 해서 반드시 아웃인 스윙궤도가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케이스다.


매버릭 서브제로를 선택한 후 나는 일부러 별도의 무게추를 구입해 헤드 페이스 쪽의 무게를 높였다. 뒤쪽에 있는 무게 추는 가장 가벼운 것을 선택했다. 페이스 쪽에 무게가 쏠리면서 헤드가 더욱 빠르고 쉽게 빠져나갔고, 나는 몸을 덤비지 않고 드라이버를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때가 가장 드라이버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별생각 없이 티샷을 할 수 있었고, 거리도 200m 이상 나갔으니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왜 계속 쓰지 않았느냐고? 그 죽일 놈의 장비병 때문이다. 신상 드라이버가 계속 출시되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슬라이스를 잡아준다는 핑의 새 모델을 결제한 이후였다. 핑은 시중에 나와있는 드라이버 중에서 헤드 뒤쪽의 무게추를 가장 무겁게 세팅하는 브랜드다.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던 거다. 매버릭으로 돌아갔으면 됐겠지만, 구형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장비병 환자는 이후로도 2-3년을 문제를 해결해 줄 신상 드라이버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결국, 그 원리를 알고 나서야 새롭게 드라이버를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새롭게 선택한 드라이버는 캘러웨이의 엘리트 트리플 다이아몬드 모델이다. 매버릭과 같은 브랜드이고, 페이스 쪽에 무게추가 설치된 모델이다. 정보를 찾아보니 페이스 쪽에 2g, 헤드 뒤쪽에 14g의 무게추가 달려있다고 한다. 당연히 나는 드라이버를 받자마자 무게추의 위치를 바꾸고 연습장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14g이 부담스러우면 10g 무게추를 새로 주문하면 된다. 벌써 판매처도 찾아두었다. 샤프트는 주말에 내가 주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벤투스 블루 TR6s를 리슬리브 하기로 예약을 잡았다. 샤프트를 교체한 후 스윙웨이트를 체크해 보고 최종적으로 무게추를 조정하면 끝이다.


만약 당신이 신상 드라이버를 고민하고 있다면, 무게추를 꼭 염두에 두길 바란다. 드라이버 헤드는 아이언에 비해 브랜드 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고, 중상급자와 초급자의 모델 구성도 다양하지 않은 편이다. 당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드라이버 헤드에 꽂혀 있는 무게추 무게를 안다면, 그리고 샤프트의 정확한 스펙과 스윙웨이트를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은 장비에 진심인 골퍼다. 프로들도 자기 장비의 구체적인 스펙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 알 필요는 없다. 대신 내가 어떤 스펙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기준만 명확하면 된다. 무게추와 스윙웨이트, 브랜드별 성향, 샤프트의 정확한 스펙과 성질 정도만 알고 있어도 충분히 새 드라이버를 선택할 때 고민할 것이 많이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꼭 프로지급용이나 중상급자용 드라이버도 시타해 보기 바란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오히려 나처럼 일반 모델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드라이버를 건네주는 캐디의 따가운 눈총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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